역사 속 공간에 파고든 인간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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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역사 속 공간에 파고든 인간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
국립광주박물관·광주극장||국립광주박물관, 테오 에쉐투 등 신작 소개||죽음·사후세계·육체의 한계성 등 개념 다뤄||개관 85주년 맞는 광주극장선 주디라둘 작품이 화제||유기적 시각에 따른 인간행동의 변화 탐구
  • 입력 : 2021. 04.14(수) 16:23
  • 박상지 기자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박물관과 영화상영관은 이색적인 공간이다. 수천년 역사의 흔적과 현대미술의 낯선 콜라보는 '죽음' '사후세계' '역사가 된 일상' 등의 주제와 버무려지면서 인간 삶의 장구한 한편의 역사를 예술적으로 완성해낸다.

개관 이후 처음으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으로 활용된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테오 에쉐투(Theo Eshetu) △트라잘 하렐(Trajal Harrell) △갈라 포라스-킴(Gala Porras-Kim)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의 신작이 전시되고 있다. 인류와 문명의 태동을 느낄 수 있는 이 공간에서는 죽음과 사후세계, 영적인 물건이 주는 보상, 육체의 한계성 등의 개념을 다룬다. 크리산네 스타타코스(Chrysanne Stathacos)의 만다라꽃이 발산하는 덧없는 찰나의 아우라에서부터 알리 체리(Ali Cherri)의 네크로폴리스가 지닌 적막함까지 예술 작품과 유물을 통해 선조와 이어지는 연쇄적 인간관계, 사후세계에 대한 비전, 비서양 문화권의 질병과 치유에 대한 도식화, 그리고 '온전히 죽지 못한 자들'이 실존 세계에서 가지는 근원적인 역할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개관 85주년을 맞은 광주극장에서는 주디 라둘(Judy Radul)이 라이브 오케스트라 공연과 함께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시각 인지의 개념과 기술적·생물학적 의미의 '이미지' 개념에 도전한다. 또 조피아 리데트(Zofia Rydet)의 1975~79년 작품인 포토몽타주는 공산 정권 시절 폴란드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현재 운영 중인 국내 극장 중 가장 오래된 광주극장의 시네마토그래피 역사와 조응한다.

테오 에쉐투 '고스트댄스'. 광주비엔날레 제공

●테오 에쉐투, 국립광주박물관=테오 에쉐투는 텔레비전, 슈퍼8 필름 녹화, 다큐멘터리, 실험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형태를 넘나들며 무빙 이미지의 영화적 재현과 시각적 문법을 여러 각도에서 탐색해왔다.

그의 프로젝트는 아프리카 근대성과 유럽 제국주의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엮어 문화적 세계와 공동체 지식의 상호 관계를 포착하는 독특한 미학에 도달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시청각 작품 '고스트 댄스'는 민족지학적으로 진열된 아시아와 아프리카 소장품과 그것들이 박물관 공간에 들어오면서 겪는 은유적인 죽음과 삶의 안무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다. '사물이 생명의 영역과 사회적 유대를 표상하는 주체성을 획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은 운동 에너지를 박물관 벽 뒤에 걸려 있는 영적 사물와 제의의 저장고로서 흘려보내는 두 뛰어난 무용수의 몸을 통해 순환한다.

부토 댄서 카세키 유코의 동작은 섬뜩한 순간과 장엄한 순간 사이를 공명하면서 인간의 몸이 다른 형태로 변형되는 것처럼 보이며, 이디발도 에르네스토의 즉흥무용은 현대 아프리카 춤과 전통 아프리카 춤을 혼합해 진열장에 갇힌 것들을 해방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두 무용수들이 사물의 역할에 착수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한 문화적 맥락에서 다른 문화적 맥락으로 움직일 때, 에쉐투는 식민지화된 영토에서 약탈된 물건을 환수하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에 참여한다.

'고스트댄스'는 아직 개관 전인 훔볼트 포룸(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과거 베를린 성을 복원시켜 만든 박물관)의 일부인 민족학 박물관과 아시아 미술관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 영상은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유물의 은유적 여정을 안무하며, 복원의 계획 및 수장과 전시의 분류 체계 너머를 보게 해주고, 패권적인 박물관을 선형적 서사에서 한시적으로 해방시켜 다성적이고 예기치 못한 것의 영역으로 데려간다.

주디 라둘 '우리를 둘러싼 세계보다 따뜻한'. 광주비엔날레 제공

● 주디 라둘, 광주극장= 주디 라둘의 작업은 시각의 위계, 세계의 물리적 힘으로서의 영화, 그리고 진실, 증거, 사회적 안무의 체제들과 행위자로서의 카메라 눈을 탐구한다. 반영, 중복, 굴절을 통해 작가는 감독하고 경계하는 카메라 눈의 실용적이고 어원적인 의미에서 감시가 어떻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서 작용하는지, 또한 유기적이고 기계적인 철저한 시각이 어떻게 인간 행동을 개조하는지 탐구한다.

호기심, 자기애, 불편함과 같은 심리학적이고 현상학적인 미디어 효과들이 주디 라둘의 여러 퍼포먼스와 작용하며 전시공간의 분위기와 관객 경험을 고조시킨다.

주디라둘은 광주극장에서 거문고 연주자이자 거문고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전자적으로 실험하는 황진아와 장구와 징을 비롯한 한국 전통 타악기 연주자인 김한나를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시지각 개념과 기술적,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이미지를 탐구한다.

보통 열 감지 카메라 기술은 무기 산업이나 국경 통제, 기계적 검사, 감시, 유령 사냥, 열 측정 시스템에 쓰이지만, 주디 라둘의 프로젝트에서는 음향적, 영화적, 신체적 경험 간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데 쓰인다.

실시간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은 예술가와 음악가들의 밀접한 협업의 결과로, 소리의 물리적 기원과 현을 당기고 타악기를 두드리는 행위, 신체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업은 음악의 역인과성을 시각화하기 위해 음의 진동, 음질, 음색의 구성력으로부터 악기와 그 물질성의 '생산'을 이끌어내고 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