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남도청이 기억하는 1980년 5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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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옛 전남도청이 기억하는 1980년 5월 이야기
5·18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 공연 '시간을 칠하는 사람'||ACC ‘광주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정작 각색||비극적 근현대사 속 개인의 삶 조명
  • 입력 : 2020. 05.27(수) 14:47
  • 김은지 기자

지난 26일 오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공연 '시간을 칠하는 사람' 프레스 콜이 ACC 예술극장에서 진행됐다.

건물은 말이 없다. 하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기억한다. 수없이 덧칠해진 건물에는 수년간, 수십 년간의 기억들이 덮여져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간직해 가고 있는 건물이 있다. 바로 옛 전남도청이다.

지난 26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 극장 1에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창·제작 공연 '시간을 칠하는 사람' 프레스 콜이 진행됐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지난 2018년 진행된 ACC 창작 스토리 콘텐츠 개발 프로젝트 '광주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스토리 공모사업에서 선정된 송재영 작가의 '시간을 걷는 건축가'를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초연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5·18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건물의 칠장이었던 노인 영식의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은 영식의 기억 속 곳곳에 새겨진 전남도청의 과거 흔적을 훑으며 비극적인 근현대사 속 한 개인의 삶을 조명한다.

공연은 극장 공간을 단순한 극의 배경을 넘어 스토리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한다. 이를 위해 특수 이동형 제작 객석이 투입됐다. 관객이 앉은 객석은 배우진, 스텝들이 직접 이동시키며, 작품의 흐름과 배우의 움직임, 이야기를 따라 관객은 극장 내를 여행하듯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생활속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좌석 거리두기를 운영하기 때문에 한 회차당 45명의 관객만 수용할 예정이다.

작품은 비극적 역사와 달리 영식의 삶 속 행복하기만 했던 과거와 희망 가득했던 시절을 감동적이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옛 전남도청이 철거되던 2000년대 어느 날부터 시작된다. 시끄러운 공사장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놀랍기까지 한 광경이 펼쳐진다. 철거를 목전에 두고 있던 옛 전남도청 건물 안에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건물 꼭대기서 페인트 붓을 들고 등장한 그는 영식(유독현 분) 이었다. 영식은 자신을 걱정하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창을 넘어 땅 아래로 몸을 던진다.

지난 26일 오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공연 '시간을 칠하는 사람' 프레스 콜이 ACC 예술극장에서 진행됐다.

충격적인 오프닝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멀리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와 함께 1960년대 도청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영식은 명심(오에바다 분)을 처음 만나게 되고, 풋사과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은 '사과'라는 태명을 가진 아들 혁이(오완우, 윤혜경 분)였다. 두 사람의 직장동료와 이웃들은 혁의 탄생에 함께 기뻐하며 잔치를 벌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사람들은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영식은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다.

장면은 전환되고, 칠장이 아빠를 따라다니던 혁은 어느새 자라 "계엄령을 철폐하라" 구호를 외치는 청년이 됐다. 혁은 새하얀 도청 벽에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그림을 다시 흰색으로 덮으려 하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다. 1980년 5월, 국가폭력에 끝까지 저항하던 혁은 군인의 폭력 아래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아들을 찾아 항쟁 중심으로 나섰던 명심 역시 영식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난다. 결국 혼자 남겨진 영식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하루하루를 악몽으로 지새운다. 그리고 일생동안 혁의 그림을 지워온 것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오랜 시간을 쓸쓸히 보낸 영식은 한참 후에야 가족의 뒤를 따른다. 사과가 일렁이는 파도를 사이에 둔 영식과 혁은 서로를 향해 손인사를 건넨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작은 도청 모형이 놓였다. 도청 창가로 새어 나오는 빛은 꺼지지 않고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 교수인 연출가 윤시중이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총괄했고, 극단 하땅세의 배우 24명이 함께했다.

공연은 27~28일 오후 7시 30분, 30일 오후 3시, 오후 7시 30분, 31일 오후 3시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열리며 관람료는 3만원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거리두기 객석제를 운영한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