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에서 보낸 열흘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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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1980년 5월 광주에서 보낸 열흘간의 시간
5·18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열흘간의 오월항쟁 서사 그대로 생생하게 그려내||관객 참여형으로 진행, 관객 몰입도 끌어 올려
  • 입력 : 2020. 05.14(목) 17:16
  • 김은지 기자
지난 12일 오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 언론 리허설이 ACC 예술극장에서 진행됐다.
"아! 슬프다. 오백만 전남도민은 무얼 하고 있느냐? 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의 뜨거운 눈물을 씻어내지 못한다. 자유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난다. 뜨겁고 힘찬 젊음의 피를 마신다. 그 피를 먹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5·18 민주화운동 투사회보 중

지난 12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창·제작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 언론 리허설이 진행됐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대중화를 실험하는 무대로, 국내 연극계 최정상 감독을 선임해 제작 과정에서부터 기대를 모았다.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80년 5월, 뜨거웠던 열흘을 생생하게 그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한다. 당시 완전한 고립 속에서 민주화만을 위해 싸운 광주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현해냈다.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관객들을 시민군으로 설정한 발상이 눈길을 모았다. 시민군의 일원이 된 관객들은 공연에 직접 참여하며 80년 5월을 더욱 생생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없이 만들어진 공연장에 들어서니 마치 40년 전 광주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공연장은 굉음으로 가득 찼다. 죽음의 공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무대 양측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전조들이 써내려졌다. 광주로 들이닥친 군인들은 아무 말 없이 시민들을 통제했고, 청각장애인 구두닦이는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실제 항쟁의 첫 번째 사망자였던 故 김경철 열사가 떠올랐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투사회보를 나눠주며 함께 낭독할 것을 권했다.

"무분별한 파괴가 아니다. 무분별한 폭력이 아니다" 회보에 쓰인 구호를 함께 외치며 공연장 안 모든 사람들이 1980년 5월의 시민군이 되었고, 40년 전 그날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어 조명으로 연출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곤봉 아래 쓰러져간 민주열사들이 흘리는 눈물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무고한 죽음을 향한 애도와 부채의식 등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관객들을 애워쌌다.

축 쳐진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황영희, 김남희 배우는 각각 '빗속의 여인', '남행열차'를 부르며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특별히 사투리로 번역해 부른 노래는 슬픔에 잠겨있던 관객들마저 웃음 짓게 만들었다.

광장 민주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도청 앞 분수대 광장의 '시민 궐기대회'도 진행됐다. 조대부고 학생들, 취업 준비생, 부산에서 온 대학생까지. 각기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5·18의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웃었고, 같이 화냈으며 같이 슬퍼했다. 1980년 광주의 모습이었다.

항쟁은 절정에 이르렀고, 시민들은 시신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희생자들의 넋이 담긴 관뚜껑은 차곡차곡 쌓여 공연장 높이 올라갔다. 태극기가 곱게 묶인 관뚜껑 아래, 도청에서의 마지막 투쟁이 그려졌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항쟁은 열흘 만에 막을 내렸다.

곱게 뉘여진 투사들과 함께 80년 5월에 머무르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 뒤에야 공연도 끝이 났다.

이번 공연은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 연출을 맡았던 고선웅 연출가가 제작과 연출을 맡았고, 극공작소 마방진 등 배우 34명이 출연한다.

공연은 15일 오후 7시 30분, 16~18일 오후 3시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열리며 관람료는 4만원(광주시민 50%할인, 5·18 유공자 1인 2매 무료)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거리두기 객석제를 운영한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