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자체가 백조와 흑조… 늘 새롭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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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자체가 백조와 흑조… 늘 새롭고 싶어"
◇광주시립발레단 최태지 예술감독 인터뷰||9살부터 발레 시작… 반세기 동안 발레 하며 수많은 성과||국립발레단 주역서 최연소 예술감독… 발레 대중화 앞장||한국예술원상 수상 "외로웠던 한국살이 인정받은 느낌"||발레단 임기 '2년 연장'… "단원들이 나의 큰 원동력"
  • 입력 : 2020. 01.08(수) 17:19
  • 최황지 기자

광주시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최태지 예술감독이 환하게 웃고 있다.

광주시립발레단은 최태지 감독이 2년 더 맡기로 했다. 재일교포 출신인 최 감독은 일본에서 태어나 프랑스, 미국에서 발레를 배웠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도, 서울에서 광주로 왔을 때도 '트렁크' 하나만을 들고 온 최 감독의 '낯선 땅 정착기'는 이번에도 성공했다.

지난 7일 광주시립발레단 사무실에서 만난 최 감독은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기자 앞에 앉았다. 지난 2년 간 매주 광주-서울을 오가는 스케줄을 병행하며 몸도 지쳤을 터지만 그는 한 번 더 주어진 '2년'이란 시간에 강한 도전 욕구를 느끼는 듯 했다.

"예전엔 서울에 갈 때마다 안락감을 느꼈는데 요즘엔 오히려 광주에 오면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광주가 이젠 내 집입니다." 그는 웃으며 '원래 집시 기질이 있다'는 농담도 덧붙였다.

9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최 감독은 국립극장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인 만 37세의 나이에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았다.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안숙선(국립창극단), 박범훈(국립국악관현악단) 전 감독과는 10살 차이가 났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지도위원, 최연소 국립발레단 단장까지 발레계엔 굵직한 족적을 많이 남긴 최 감독은 한편으로는 늘 외로웠다. 어린 나이부터 견뎌야 했던 수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기 때문이다. 무던히 한국 발레 격상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무용계에는 최태지 밖에 없느냐'는 핀잔도 들어야 했다.

그러다 지난해 받은 한국예술원상은 그에게 또 다른 힘이 됐다. 그는 "한국 예술계의 원로들에게 인정받은 상이라 나에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한국 국적을 절대 포기하지 않은 부모님덕에 나는 한국에서 발레를 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한국에서 발레하는 일은 사실 외로웠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항상 어떤 평가를 받을까 늘 가슴 졸이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상으로 인해 '한국에서 무용으로 두 발 딛고 설 수 있는 자격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감격했다.

최태지 예술감독이 광주시립발레단원들과 함께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광주시는 2017년, 공모 방식 대신 청빙제를 통해 최 감독을 위촉했다. 당시 광주시와 발레단 단원들은 모두 최 감독을 원했다. 이 같은 기대에 부흥이라도 하듯 그는 단원들과 함께 광주 발레를 격상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 감독의 발레 철학인 '대중성을 높인 발레'는 시민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틈틈이 클래식 발레와 창작 발레도 선보이며 시립발레단의 질적 향상도 이뤘다.

최 감독의 발레 지도 철학은 '테크닉'이 아니라 '예술'이다. 그는 "발레는 언어 없는 예술이다. 단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몸으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며 "관람객은 발레리나의 다리가 얼마나 잘 올라가고 잘 점프하고 턴하는 것을 보러온 것이 아니다. 애절한 눈빛과 몸짓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다. 단원들이 음악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단원들이 나의 가장 큰 활력이다"는 최 감독은 단원들을 지도할 때는 함께 움직인다. 공연 당일에는 무대 뒤가 아닌 객석에서 시민들과 공연을 관람한다. 최 감독의 '함께'하는 리더십이다. 환갑이 넘도록 그녀가 젊은 생기로 가득차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물론 지금은 점프도 못하고 토슈즈 신고 돌지도 못한다. 그러나 마음속에선 늘 춤을 춘다. 그래서 아직은 무용수처럼 젊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며 "객석에 앉아있을 땐 관객 입장에서 박수치고 본다. 호두까기 인형(지난해 12월)때 관객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너무 행복했다. 이런 에너지들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수석 무용수에서 예술감독까지 활력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에게 '롱런'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발레 자체가 내 인생'이라고 했다. 단체 수장으로서 참고 견뎌야 할 점은 백조처럼 타협하고 순종하면서도 쟁취해야 할 점은 흑조처럼 과감하게 돌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올해 발레 단원을 10명 더 충원시키는 데 공헌했으며 발레단에 지급되지 않았던 토슈즈도 지급될 수 있게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등 단원들의 복지 성장도 이뤄냈다.

"난 제자리에 있는 것을 싫어하고 변칙을 좋아한다"며 "백조와 흑조는 모든 사람 속에 있는 양면성이다. 실제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현실과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개척하는 정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새롭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최황지 기자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