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성업’ 미아리 텍사스, 역사 속 마지막 페이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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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60년 성업’ 미아리 텍사스, 역사 속 마지막 페이지로
마지막 주거 여성까지 퇴거
재개발 위해 철거 본격 개시
  • 입력 : 2025. 04.21(월) 09:46
  • 연합뉴스
미아리 텍사스 종업원과 업주, 호객꾼 등이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청에서 이주 대책 마련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오전 찾은 미아리 텍사스.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는 노란 안내 푯말을 지나자, 공가들로 휑한 골목에선 쓰레기 악취가 풍겼다.

찢어진 붉은 차광막 사이로 듬성듬성 드는 볕의 끝에는 퍼레진 아이라인 문신에 낡은 카디건을 입은 이모씨 등 ‘삐끼 이모’ 4명이 서 있었다. 이씨는 미아리 텍사스에서 종업원과 업주, 그리고 호객꾼으로 27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다 20∼30년씩 근무한 사람들”이라며 “손님이 진상인지 아닌지 딱 하면 알아본다. 따지고 보면 기술직”이라고 했다.

때마침 한 중년 남성이 골목에 들어서자 삐끼 이모들이 달라붙었다. 경쟁의 승자는 이씨였다. 이씨는 “저 사람은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이라며 남성과 함께 골목으로 사라졌다.

미아리 텍사스의 주소는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 1968년 대표적 성매매촌 종로3가가 도심 재개발로 철거되며 일제 시대 공동 묘지이자 전후 빈민촌이던 이곳으로 옮겨왔다.

자신이 나고 자란 하월곡동에 1996년 ‘건강한약국’을 차려 운영 중인 약사 이미선(64)씨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데다 집값이 싸서 사람이 많이 몰렸다”고 했다.

황금기는 ‘3저 호황’과 통행 금지 해제가 겹친 1980년대부터였다. 이곳에서 50년 넘게 산 상점 주인 A씨(67)는 “사람이 많아 골목을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88 올림픽 때는 동네 개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라고 부연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여성 단체들은 2000년쯤엔 업소 360곳의 3000여명이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한 것으로 추정한다. 주부였던 삐끼 이모 이씨가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다.

이씨는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지며 애들을 키워야 해 어쩔 수 없었다. 먼저 일하던 친구를 따라왔다”고 했다. 당시 한 달에 500만∼6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고 한다. 물가 상승률을 따지면 현재 1000만원에 육박하는 거금이다.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외환 위기 때까지만 해도 견딜만했지만, 2000년 김강자 당시 종암경찰서장의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2005년 화재 참사 등을 거치면서 손님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2009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201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조합의 철거 압박이 계속됐다.

업소를 직접 운영했던 이씨도 구속돼 열 달간 복역했고, 당시 선고된 1억원의 추징금을 갚지 못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곳에서 나가서 일을 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미아리 텍사스의 북동쪽엔 성매매 여성들의 주거지가, 남쪽 내부 순환로를 따라서는 업소가 몰려 있다. 현재는 수십 개 업소에서 100여명 정도가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법원이 지난 16일 마지막 여성 2명을 주거지에서 강제 퇴거시키며, 이곳에 거주하는 여성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철거가 마무리되면 현재 1∼2층 높이 주택과 업소인 이곳은 최고 47층 높이의 아파트 2200여가구로 재개발된다.

강제 집행으로 집에서 쫓겨난 B(38)씨는 10년 동안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했다. B씨는 “그동안 잘 된 적이 없다. 많아도 월 200만∼300만원 정도였다”며 “요즘은 하루 두세 명도 안 된다. 한 달에 50만원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작년 9월에는 이곳에서 일하던 30대 미혼모가 사채에 시달리다 자녀를 두고 세상을 등졌다.

B씨를 비롯한 여성들은 이주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성북구청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이다. 성북구청은 오는 21일까지 자진 정리하지 않으면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