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삼성의 독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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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삼성의 독해질 결심
김성수 논설위원
  • 입력 : 2025. 03.18(화) 17:38
“밥알이 몇 개고?”

인기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이 조리장과의 대화 장면에서 한 말이다. 해당 장면은 실제 삼성전자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일화 중에 하나다. 이병철 회장은 스스로가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던 신라호텔 조리부장에게 초밥의 밥알 개수를 물어봤다고 한다. 당황한 조리부장 앞에서 이 회장은 “점심에는 식사용 한 점에 320알이 맞고, 저녁에는 안주로 많이 먹으니 280알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리부장을 향해 “배움의 길에는 끝이 없다. 이말을 명심해라”고 조언했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삼성전자를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다. 1982년 73세의 이병철 회장은 나라의 백년대계를 고민하다 ‘반도체 개발’을 결심한다. 이른바 이병철의 ‘도쿄 선언’이다. 그는 미국과 일본 업체들의 비난과 조롱, 내부 반대에도 불구, 6개월 만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고,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다. 아시아의 작은 전자회사에 불과했던 삼성은 도쿄 선언 10년 만에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등극했다.

그의 DNA를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 역시 탁월한 경영 행보를 보여왔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내놓는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일본기업을 베끼고 자만에 빠져 도전을 하지 않고 있다’는 보고서를 읽고 충격에 휴대전화를 쌓아놓고 불태운 일화는 삼성의 역사에 각인돼 있다.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 ‘일류 경영’의 밑거름이 됐고 애니콜 이후 열린 스마트폰 시대에 갤럭시의 신화를 창조해냈다.

하지만 삼성에 위기가 찾아왔다. 삼성은 인공지능(AI) 혁명의 시대에 고부가제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납품 지연으로 반도체 부문이 경쟁사에 밀리고 있고 TV·스마트폰·D램 등 주요 시장의 점유율도 하락세다. 오너의 사법 리스크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트럼프 2기의 ‘자국주의’는 한국 경제를 옥죄고 있다. 오죽했으면 삼성家 3세대 경영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임원들에게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며 ‘독한 삼성인’으로 거듭날 것을 주문했다.

삼성은 위기 때마다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과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소환된다. 시대가 달라졌어도 혁신과 기술력은 변함없는 생존 법칙이다. 이재용 회장의 작심 발언은 위기 속에 삼성만의 타개책을 찾기 위한 ‘정신무장’과도 같다. 일순간의 방심으로 초격차 경쟁에서 자존심을 구긴 삼성의 ‘독해질 결심’이 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김성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