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매화송(梅花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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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매화송(梅花頌)
  • 입력 : 2025. 03.09(일) 16:06
  • 최도철 미디어국장
최도철 미디어국장
계절의 변화는 색으로 온다고 했던가. 경칩(驚蟄)이 지나자 바람에 물기가 배고, 담장너머 벚나무, 매실나무 엷은 가지에 붉은빛이 감돈다.

봄의 신열에 마당가에 심은 수선화, 튤립, 작약도 새색시 손톱같은 순을 일제히 내밀었다. 매서운 겨울고개를 넘어 온 봄의 전령사들이다.

춘삼월이 다 되도록 맵찬 바람이 불고 눈까지 내려 예년보다 늦었다고는 하나, 이곳에서 저곳에서 봄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간간이 방송을 탄다.

이맘때면 섬진강 다압마을에서, 지리산 산동마을에서 어김없이 꽃축제가 열린다.

한겨울 지나 봄꽃이 피면 괜스레 싱숭생숭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진뫼마을 사는 김용택 시인도 그렇다. 물비늘 반짝이는 섬진강을 따라 희고 붉은 매화가 꽃구름처럼 피어나면 꽃 본 나비처럼 몸이 달아 호미자루 던져 놓고 봄마중 나선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의 시 ‘봄날’)

바야흐로 매화의 계절이 왔다. 1년을 기다려 온 탐매(探梅)요, 심매(尋梅)의 절기가 온 것이다.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지조의 상징 매화는 어디에 피더라도 이쁘기만 하다. 하지만 고아하고 격조높은 매화의 진수를 보려면 노매(老梅)를 친견해야 한다.

노매는 남도가 압권이다.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매 가운데 강원도 율곡매를 제외하고는 모두 호남에 있다. 이름하여 ‘호남 5매’다.

화엄사 길상암 연못가에 기우뚱하게 서 있는 ‘들매화’와 각황전 옆 ‘화엄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우소를 가진 선암사의 ‘선암매’, 담양 지실마을 ‘계당매’, 전남대 민주마루 ‘대명매’, 백양사 ‘고불매’ 등이 수백 년 묵은 청향(淸香)을 내뿜는다.

이외에도 탐매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바림해두는 명소들이 여러 곳 더 있다. 통도사 ‘자장매’, 도산서원 ‘퇴계매’, 하회마을 ‘서애매’, 운림산방 ‘일지매’ 그리고 섬진강 최참판댁 길목 가로수 매화인 가로매(街路梅)도 빼놓을 수 없다.

심술궂은 날씨에 만개하지 못해 아쉽지만, 엊그제 광양매화축제가 열려 열흘간 이어진다고 한다.

마음에 바람이 부는 날, 다압면 도사리 매화동산에 올라, 10만 여 그루 매화향이 섬진강 허리를 휘감아 도는 선경을 보노라면 홍진(紅塵)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최도철 미디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