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아 여전히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는 광주 서구 벽진동 상촌마을 주민 곽희성씨가 지난 10일 대야에 물을 채우고 있다. 정상아 기자 |
지난 10일 오전 찾은 광주 서구 벽진동 상촌마을.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점퍼 하나만 달랑 챙겨 입은 주민들이 마을 한쪽에 마련된 공동 생활용수 저장시설(지하수 관정) 주변을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뜨자마자 이곳을 찾았다는 한 주민은 “날씨가 추워서 동파되지는 않았나 걱정돼서 왔다”며 “이거 하나 고장 나면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물을 못 쓰는 거다”고 울상 지었다.
광주 지역에서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수돗물을 이용하지 못하는 마을 주민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12일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광주 지역에 상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마을은 광주 서구 상촌마을을 비롯해 광주 북구(석저·수리·충효·환벽·평촌·우성·금곡·산장), 광산구 가산마을 등 총 10곳이다.
상촌마을은 상수도가 없어 주민들이 수십 년 전 직접 관정, 물탱크 등 공동 생활용수 저장 시설을 만들어 물을 저장하고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타이머 방식의 펌프 기계를 돌려 30톤 용량의 물탱크에 지하수를 채워둔 뒤 35세대가 물을 공급받아 생활하는 방식이다.
할당량이 정해져 있어 물을 최대한 아껴 써도 여름에는 부족하고, 겨울이면 배관이 얼어 생활에 큰 불편을 겪는다.
주민 곽희성(66)씨는 “빨랫감이 많고 샤워를 자주 하는 여름철에는 물을 최대한 아껴 쓰더라도 부족하다”며 “겨울철에는 동파로 인해 시설이 고장 나 물이 끊기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 5일 오후 3시30분께 서구 벽진동 상촌마을에서 공동 생활용수 저장 시설과 연결된 배관이 한파에 얼어붙어 물 공급이 끊겼다.
광주시와 소방 당국은 생수 600리터와 용수 6톤을 긴급 급수하고 복구 작업에 나섰지만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그동안 시설 개선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공동 생활용수 저장 시설은 수십 년간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를 하다가 두 달 전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장소를 옮겨 새롭게 시설을 마련하고 관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물탱크에서 각 가정으로 연결된 낡고 오래된 배관은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현재 마을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곳들에 대한 지원은 배수관 부설공사로 인해 모두 마무리된 상황이다”며 “추가적인 개선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이 자부담으로 신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민 곽씨는 상수도가 연결돼 수돗물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길 바라고 있지만 ‘군사기지 근처인 탓에 지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상촌마을은 인근에 폭발물 관련 시설인 탄약고가 있어 1976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 각종 개발사업이 제한되고 있다.
땅 소유주의 반대도 문제다. 상수도 공사를 하려면 일부 개인 사유지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동의를 얻기가 어려워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안형주 광주 서구의원은 주민들의 숙원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군사시설보호구역 주민 지원에 관한 조례’를 발의했다.
조례에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인한 지역발전 피해 예방 △민·관·군 갈등 해소를 위한 상호교류 △주민의 생활편익과 복지증진 및 생활비용 지원 등이 포함됐다.
조례가 제정됐지만, 아직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실질적인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이에 주민들은 “조례만 만들고 손 놓고 있는 것 아니냐”며 늑장 행정을 지적하고 있다.
서구 관계자는 “현재 절차상 예산이 배정될 수 없는 단계로, 의회와 협의해서 오는 5월 추경 예산을 확보하는 등 모든 방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