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집으로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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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庭園·임효경>집으로 돌아오는 길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9.03(화) 18:25
임효경 완도중 교장.
작년 2월 말, 학교장으로 발령을 받고 완도 청해진으로 내려가는 날, 봄날의 햇볕이 유난히 밝고 따듯했었지요. 1년 반 완도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퇴임식을 하는 날도 여름의 마지막 햇살이 명랑함을 드러내며 완도중 운동장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여름 내내 새롭게 운동장 인조 잔디를 단장했는데, 초록색이 시원한 운동장을 선물로 남겨 주느라 애썼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 했습니다. 태풍 영향권으로 비라도 내리고 구질구질한 양상이었더라면 아마 울적한 마음이 더 컸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완도 청해진의 하늘도 항상 내 편이었던 것 같아서 훈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하늘도 돕고, 온 학교가 돕고 온 마을이 도와서, 나의 55년간(배우며 16년 + 가르치며 39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배웅해 주니, 웃으며 안녕을 할 수 있었답니다. 울컥한 마음이 있었지만, 건강하게 환대받으며 서로 이별의 아쉬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꿈같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 퇴직 기념 책을 만들 때처럼, 퇴임 기념식을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그 수고를 받기로 작정했답니다. 사랑은 이벤트이니까요.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만 담아두고, 말만 하는 것으로 그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으니까요.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가 받은 환대를 나의 정성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면, 그 정성이 돌고 돌아 언젠가는 또 그들에게까지 도달하려니 생각하거든요. 사랑도 받아 본 사람들이 또 그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그 사랑의 이벤트가 나를 감격하게 하고 눈물짓게 하였습니다. 그저 감탄하고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날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정성을 다하여 풍성하게 표현해 준 완도 청해진의 사람들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완도중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 그리고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8월 마지막 날,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퇴직하는 교장을 위해 퇴임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날 7교시 수업을 마치고 평소 같으면 하교할 시간에 260명 학생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교장에게 예를 표하겠다고 체육관에 모였습니다. 세상에, 천방지축 중2들도 조용하게 교장의 회고사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박수쳐 주고, 아쉽다고 눈시울 붉히다니요. 10개 반의 아이들이 각각 독특한 장면을 연출하며 동영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안녕! 교장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학생자치회장은 꽃다발을 전달하며 붉어진 눈을 애써 감춥니다. 그 마음 그대로 전달되어 나도 가슴이 찡합니다. 현준아, 친구들과 후배들을 부탁한다. 잘 해 낼 것을 믿는다.

선생님들과 교직원들은 1년 반의 소중한 장면들을 모아 영상으로 뒤돌아보게 해 주며, 나의 모습을 기억하겠다고 합니다.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정박하듯 39년간의 교육의 항해일지에 마침표를 찍는 교장에게 스승이라고, 선배라고, 새로운 출발하는 앞날에 건강과 기쁨이 넘치기를 바란다고 패를 만들어 존경의 마음을 담아 주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나에게 숙제도 주었습니다. 퇴직 후,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기. 그래서 더 멋진 앞날 만들기. 그 숙제 잘 해 내서 그들에게 또 다른 인생 선배의 모습 보여줄 까 합니다. 단지 선배로서 더 좋은 교육환경 만들어 주지 못하고, 오히려 얍삽하게 힘들고 어려운 길에서 한 발 뺀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큰 짐을 안겨준 것은 아닌 지 그저 저어됩니다.

학교운영위원님들은 완도 청해진 사람들의 호탕한 정성을 모아 나를 깜짝 놀라게, 평생 처음 받는 큰 선물을 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십니다. 책읽기와 글쓰기 활성화를 위해 애써준 것과 매일 아침 흔들림 없이 등굣길을 지켜주고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친근하게 대해주던 모습을 잊지 못할 거라며 헤어짐이 아쉽다고 감사패에 마음을 담아 주셨습니다. 학부모회장님과 어머님들은 풍선 아트로 식장을 장식해 주고, 평생 간직하며 그 정성에 감동하기에 충분한 수공예 작품 선물로 눈물짓게 하십니다. 행복나무에 좋은 과실 열리게 해 주었다는 칭찬을 해 주십니다. 매년 벚꽃과 수국이 운동장가에 필 때, 효경수국이라, 효경벚꽃이라 부르며 그리워할 것 같다고 하십니다. 아, 도대체 이 풍성한 마음들에 내가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까? 내가 참 큰 빚을 졌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것은 보람차고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온 힘과 정성을 다했을 때 종종 일어나는 것이고, 대부분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이 자주 위태롭게 이어져 가는 것이 교육현장의 현실입니다. 더 많은 이해를 바탕으로 학교교육 구성원(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들의 상호 존중과 배려, 그리고 진심어린 소통이 있을 때 학교가 더 건강해지고 학생들은 더 행복해 질 것입니다. 이제 나는 교육의 뒤안길로 물러납니다. 교육의 후배들이 내게 남긴 숙제를 잘 할 것입니다. 앞으로 나는 보잘 것 없는 힘과 능력이라도 주변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배우며, 나누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매일 아침 8시, 나는 완도 청해진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서망산 중턱 청해진남로 88번지 학교 교문에 마음이 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애들아, 어서 와.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