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 광주시장이 10일 동구 금남로공원 광장에서 열린 ‘6·10민주항쟁 37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자랑스러운 6월 항쟁상 시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
6·10민주항쟁이 10일 37주년을 맞았다. 6·10항쟁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4·13호헌 조치가 발표된 데에 맞서 그해 6월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학생과 직장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직선제 개헌 약속을 담은 6·29선언을 이끌었다.
6·10항쟁 중심에는 가장 격렬하고도 처절하게 맞서 싸운 광주가 있었다.
실제로 당시를 기억하던 이들은 “광주는 처음엔 조용했지만, 결국은 전국적으로 가장 치열했었다”고 입을 모았다.
1987년 1월14일, 서울시 용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이 고문을 당하던 중 사망했다. 사건을 은폐하고자 했던 경찰은 “심문 과정에서 실토하라고 책상을 내리쳤더니 심장마비로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그해 4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특별 담화를 통해 대통령 간접 선거 조항을 사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을 열망하던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한달 뒤인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마티아 신부가 5·18 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은폐됐고 고문경찰은 모두 5명이었다는 것을 폭로했다. 그리고 6월9일, 연세대에서 한명의 학생이 경찰이 직격한 최루탄을 후두부에 맞고 사망했다. 광주 출신 이한열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6월 항쟁은 10일 서울을 기점으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정작 5·18을 겪은 광주는 조용했다.
“제 기억으로는 주말에 우리학교(전남대)는 축제가 있었어요. 조선대도 학내 민주화 문제로 시끄러웠구요. 외부 시위를 나설 상황이 아니었죠. 하지만 이미 물밑으로는 날짜가 잡혔습니다. 바로 15일이었죠.”
6월 항쟁때 전남대 1학년에 재학중이었던 김정환(58·자영업)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축제기간 선배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고, 학내 곳곳에는 대자보가 붙었다고 했다. 그렇게 15일이 됐다. 조용했던 것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광주 주요 대학들에서 시위가 터졌다. 특히 전남대와 조선대는 항쟁 첫 주에 적극 가담하지 못한 것을 한풀이라도 하듯 가장 치열하고도 적극적으로 경찰과 맞섰다.
당시 조선대 휴학중이었던 박기영(60)씨는 “80년 5월은 광주 말고는 아무도 안나섰지만, 87년 6월은 달랐죠. 전국이 들고 일어났거든요. 그러니까 광주에서는 더욱 자신감이 붙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이미 80년 5월을 경험했던 광주는 격렬하게 군부독재에 저항했다. 그렇게 12일간 벌어진 항쟁은 결국 역사적인 6·29 선언을 끌어냈다.
박씨는 “지금 인터넷이다 어디다해서 광주 5·18을 왜곡하고 조롱하지만, 그들이 이런 왜곡과 조롱을 할수 있는 자유마저도 광주사람들의 피와 함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면서 “5·18 진상조사위 보고서가 국회에 올라간다는데 여기서마저 왜곡을 한다면 광주의 분노가 어떤식으로든 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의원들도 “광주의 저항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홍기월 시의원(민주당·동구1)은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80년 5월 항쟁 당시 20살 대학생으로 현장에서 투쟁했고 그때의 열망을 이어 87년 6월에도 직장을 다니면서 금남로에서 ‘독재타도’를 외쳤었다”면서 “최근 대북문제와 정치·지역 갈라치기 등 문제가 많은데, 숭고한 열사들의 정신을 이어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5·18특별위원인 이명노 시의원(민주당·서구3) 역시 “(6월항쟁은) 광주항쟁의 ‘민주주의 불씨’가 비로소 꽃피운 날이다. 수많은 선배 열사들의 희생과 저항으로 이룩한 역사를 잊지 않겠다”며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민주주의 선배들의 마음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는 이날 동구 금남로공원에서 6·10항쟁 광주·전남 합동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에는 강기정 광주시장, 명창환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남국 ㈔광주전남6월항쟁 이사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강 시장은 “광주의 아들 이한열과 부산의 아들 박종철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6월 광장에서 여러분이 흘린 피와 땀, 눈물도 기억하고 있다”며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6월 항쟁의 승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참여해준 국민, 이 자리에 계신 시민들 덕분이다”고 말했다.
노병하·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