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위협·성희롱… ‘악성민원’ 시달리는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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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폭언·위협·성희롱… ‘악성민원’ 시달리는 공무원
광주시·구청 작년 폭언 등 1931건
담당공무원 신상 공개 ‘좌표찍기’
여직원 상대 성희롱·폭행 잇따라
姜시장 “보호 위한 실질방안 마련”
  • 입력 : 2024. 04.25(목) 18:24
  •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
강기정 광주시장이 25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지난 3월6일 경기도 김포시의 한 공무원이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 온라인 카페에서 신상정보가 공개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공직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해당 공무원은 지난 2월29일 김포의 한 도로에서 한 포트홀(도로 파임) 보수공사 관련 차량 정체가 빚어지자 항의성 민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한 온라인 카페에 공사를 승인한 공무원의 실명과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가 공개됐다. 그때부터 이 공무원은 불특정 다수의 민원에 매일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청과 구청 공무원들 역시 매년 2000여건에 달하는 악성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25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와 동·서·남·북·광산구 5개 자치구에 접수된 악성민원 건수는 1931건으로 폭언·폭설이 1366건으로 가장 많았다. 위협·협박도 460건이었고 성희롱은 82건에 달했다.

특히 일선 구청의 악성민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폭언·욕설의 경우 시 4건, 구 1362건 △위협·협박은 시 2건, 구 439건 △성희롱 은구 82건 △폭행·폭력은 구 8건 △기타 구 15건 등으로 나타났다.

‘폭언·욕설’은 민원내용과 무관한 화풀이성 막말, 술에 취한 상태로 전화해 욕설, 말꼬리 잡고 인신 공격성 반말, 본질 민원은 없어지고 트집 민원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위협·협박’은 민원인 요구사항 불수용시 감사실에 신고하거나 통화녹음을 언론사에 배포한다는 협박이나 ‘휘발유를 가지고 방문하겠다’, ‘직원 가족들도 가만두지 않겠다’ 등이었다. ‘성희롱’은 여직원을 상대로 성관련 비속어 남발, 성희롱, 성적수치심을 느끼는 협박 등이다.

‘폭행·폭력’은 훨씬 더 직접적이다. 민원 처리 불만으로 공무원 얼굴을 때리거나 음주상태로 방문해 폭행하기도 하며, 민원인에게 접대한 차를 담당자에게 뿌리는 경우도 있었다.

김포시 공무원 사례처럼 이른바 ‘좌표 찍기’도 있었다. 논란이 된 ‘정율성 공원’ 조성의 경우 담당부서 공무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여기에 5·18민주화운동 보상 탈락에 대한 항의를 비롯해 반려동물 사육농장에 대한 민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며 담당직원과의 통화 내용을 게시판 등에 공개하는 사례도 줄을 이었다.

공무원 노조는 서울시처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직원들을 보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특이민원이 지난 2018년 2135건에서 2021년 1만7345건으로 급증했으나, 2022년 관련 대책을 강화한 이후 1만117건으로 전년 대비 42%가 감소했다.

서울시는 120다산콜센터로 민원상담·접수 창구를 일원화해 각 부서 민원응대 직원들의 전화 민원 부담을 낮췄다. 안전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청 1층 열린민원실 직원들에게 목걸이형 카메라(웨어러블 캠)와 공무원증 케이스 녹음기를 제공했다. 또 보호조치 통화연결음 역시 민원담당관, 교통지도과 등 82개 부서(1792대)에 보급했다.

민원상담실에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현장 민원이 많은 서울시 산하 46개 사업소에는 경찰서와 연계된 비상벨을 확대 설치했다. 상담 창구에는 안전유리를 설치했고 민원실 전담 안전요원을 배치했다. 30분 이상 통화를 끊지 않는 경우 통화 연결음으로 ‘응대를 종료한다’고 안내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여기에 사업소 민원 담당 직원의 경우 월 1회 정기적으로 출장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1인당 최대 100만원까지 치료비도 지원하고 있다. 법률적 대응 지원도 강화해 직원이 피소당하거나 직원이 민원인을 위협적인 폭언·폭행 등의 이유로 고소하는 경우, 사건 초기부터 종결까지 변호사를 전담 배정해준다.

광주시의 경우 그동안 악성민원에 대해 타 지역에 비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앞으로는 ‘가족 협박·욕설·좌표 찍기’ 등 악성민원에 대해 고소·고발 등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강기정 시장은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시민의 민원을 처리하는 것은 공무원이 담당해야 할 일이지만 모욕과 욕설, 위협은 민원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앞으로는 악성민원에 대해 엄정대응하고 담당직원 보호를 위한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 관계자는 “악성민원으로 인한 피해는 전화를 받은 사람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사기 저하를 불러 일으킨다”면서 “공무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마음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