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저건 맞고 사망… ‘적극대응 함정’ 빠진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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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테이저건 맞고 사망… ‘적극대응 함정’ 빠진 경찰
흉기 휘두른 피의자에 전기충격
조사 중 돌연 사망… ‘경찰책임?’
시민들 ‘과하다’ ‘적절대응’ 의견
‘매뉴얼대로 진행’ 처벌 어려워
“저위험 권총 등 안전책 강구를”
  • 입력 : 2024. 04.24(수) 18:31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테이저건 사용 코드1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경찰 체포에 저항하던 살인미수범이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을 맞은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기충격이 사망에 직접 관여 했는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을 기다려야겠지만 ‘물리력 사용’을 두고 현장 경찰관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최근 경찰청장이 ‘흉기난동에 과감한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말라’고 천명한 만큼 더욱 안전한 진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24일 광주경찰·북부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50분께 북구 양산동 한 아파트에서 50대 A씨가 30대 아들 B씨를 흉기로 찔렀다는 가족의 112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B씨 위에 흉기를 들고 올라타 있는 A씨를 확인, 등과 엉덩이를 향해 테이저건을 쏴 제압했다. 당시 경찰은 흉기를 버리라고 지시했으나, A씨가 따르지 않고 반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30여 분 뒤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서로 이송된 A씨는 압송 2분 만에 돌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응급처치를 받고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결국 같은 날 오후 7시30분 숨졌다. 병원 측은 A씨 사인에 대해 ‘원인 불명 심정지’라는 소견을 냈다. 경찰은 생전에 고인이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지병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 테이저건이 A씨 사망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국과수에 부검 의뢰했다. 부검 결과 전기충격이 사망과 연관된다고 판명되면 지역에서 테이저건으로 인한 첫 사망사고 사례가 된다.

흉기로 어깨와 옆구리 등이 찔려 기절했던 B씨는 의식을 회복해 치료 중이다. A씨는 최근 아내와 이혼 소송을 벌이는 등 가정불화를 겪던 중 범행을 계획적으로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테이저건(전자충격기) 유의사항. 경찰청 제공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안타깝다’, ‘적절한 대응이다’ 등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인권활동가 강모(29)씨는 “흉기를 들고 있었고 그의 아들이 위급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테이저건 사용은 적절했다고 본다”면서도 “사망의 안타까움과 별개로 테이저건이 모두에게 안전한지 등 본질적인 재진단이 필요하다. 안전망 없는 진압 도구는 공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공무원 정남현(35)씨는 “공직자들은 국민을 위해 일을 한다. 이번 사례 또한 경찰이 추가 피해자를 낳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며 “경찰관이 이 일로 징계를 받는다면 앞으로 국민 안전을 장담 받지 못한다. 매뉴얼대로 진행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밝혔다.

권총형 진압 장비인 테이저건은 두 개의 철심을 통해 5만V의 전류가 흘러 순간적으로 근육을 사용할 수 없게 한다. 심혈관 등에 치명적이라 조준점·이격거리 등 여러 유의사항이 안내된다. 한국에는 2005년 처음 도입됐다.

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익명을 요청한 지역 심장내과 전문의는 “50대라는 나이는 일반적으로 급소를 맞지 않는 한 테이저건 탓에 사망하기 쉽지 않다”며 “앞서 앓고 있던 심혈관계 질환(고혈압 등)이 이유가 될 수 있는데, 범행 중 극도로 흥분·긴장한 상태에서 전기충격이 가해지다 보니 쇼크가 왔을 가능성이 있다. 부검 결과가 나와봐야 겠지만 현장 경찰이 피의자 병력 등을 알 수는 없었기에 물리력 행사에 대한 처벌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귀띔했다.

경찰의 물리력 행사는 총 5단계로 △순응 - 수갑·언어적 통제 △단순 불응 - 경찰봉·방패로 밀어내기 △소극 저항 - 누르기·조르기·넘어뜨리기 △적극 저항 - 전자충격기 및 가스분사기 사용 △공격 저항 - 권총 사용 순이다. 대상자가 경찰관이나 시민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폭력적 공격’ 상태에선 경찰봉이나 테이저건 등을 이용한 ‘중위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경찰과 전문가들은 경찰청에서 ‘범죄 강력 대응’을 시사한 만큼 더욱 안전한 진압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이상동기범죄 등이 잇따르자 ‘흉기난동에 대해 총기·테이저건 등 경찰 물리력을 주저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서강오 전남직장협의회장은 “현장 경찰들이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법 개선과 장비 보급이 시급하다”며 “경찰은 무기를 사용하고 난 뒤 자신에게 짊어질 민·형사상 책임을 걱정한다. 이번 사건도 어떤 경찰이 사망까지 이를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현장의 고민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약하게 대응하면 무능론이 나오고 과감하면 과잉진압이라는 여론이 생긴다. 모두가 만족할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대체 총기(저위험 권총)와 바디캠 의무화 도입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저위험 권총은 살상을 막을수 있고 더 먼 거리에서 타겟을 제압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상황별 경찰 물리력 행사 단계. 서여운 편집디자인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