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학교 정문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는 한 학생이 다가오는 차량을 향해 ‘잠시만 멈춰달라’는 손짓을 보내고 있다. 정상아 인턴기자 |
지난 11일 보행자의 날을 맞아 방문한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정문.
차단기 주변에는 주차된 차들이 빽빽이 들어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잔디밭·운동장 등 학내로 배달온 오토바이들은 주차된 차들을 피해 인도로 다니는 등 곡예 운전을 하기도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 나온 시민들은 ‘쌩쌩’ 지나가는 차량·오토바이를 피해 몸을 웅크리기까지 했다. 특히 전남대 캠퍼스는 차량 이동 속도가 30㎞로 제한돼 있지만, 현장에서 이를 지키는 차량은 많지 않았다. 학생들이 느끼는 보행 안전은 당연히 미미했다.
학업 스터디를 위해 주말에 학교를 찾았다는 이모(22)씨는 “항상 위험하다. 학교를 오가는 차량이 너무 많다 보니 사실상 차량보다 사람이 더 조심해 하는 상황”이라며 “(학생 안전을 위해) 로터리 등을 설치한다고 했는데 효과는 크지 않다. 속도 제한 안내판도 정문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킥보드랑 배달 오토바이는 (규정을) 다 무시하고 다닌다. 과속 방지턱도 너무 낮아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더 각별한 뭔가(대책)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남대에 문의한 결과, 학교는 △농대·사회대 부근 로터리 설치 △보행도로·차로 차단 가림시설 설치 △차량 이동 속도 30㎞ 제한 △과속 방지턱 설치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날 취재 현장에서는 전동 킥보드와 승용차가 부딪칠 뻔 하는 등 아찔한 상황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전남대 민주마루 건물 인근 도로에서 킥보드를 타던 학생들은 학생회관에서 나오는 차량을 미처 보지 못하고 급정거했다.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킥보드에 탄 2명의 학생은 중심을 잡지 못해 쓰러졌고, 이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귀에 이어폰 등을 끼고 있어 차량 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전남대학교 민주마루 인근 도로에서 보호장비 등을 착용하지 않은 학생들이 빠른 속도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있다. 정성현 기자 |
이날 찾은 현장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학생들이 보행자가 건너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 차들의 주행으로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다.
재학생 차경태(21)씨는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이동하는 차가 많아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 빈번하다”며 “신호등이 없으니 발생하는 문제 같다. 보행자도 ‘언제 지나가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정확한 신호체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학교는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도로 외 구역’으로 분류돼 있어, 신호등 등 도로·교통 안전시설 설치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도로 외 구역이란 차량통행 등이 다수 발생하나 도로교통법에서 정의하는 도로에 포함되지 않아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도로를 말한다. 이 때문에 교통사고 통계에서도 제외돼 실태 파악조차 어렵다. 결국 ‘보행 사고 사각지대’에 노출된 학생들만 그 피해를 온전히 받고 있는 셈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전국 대학 교통안전실태 및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무작위 대학생 500명 중 108명(24.2%)이 대학 내에서 보행 중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위험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또 12대 중과실에 대해서도 합의·보험 처리한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없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원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 부처에 △대학 내 교통안전시설 개선·확충 △교통안전시설·관리 가이드라인 마련 △도로교통법 적용 대상에 대학 내 이동로를 포함해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의무 강화 △대학 내 교통사고 가해자 처벌 규정 강화 등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국회는 지난 8월 교통안전법을 개정, 사유지인 대학 캠퍼스 도로를 ‘단지 내 도로’로 포함했다. 해당 개정안은 내년 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다행히 교통안전법이 개정돼 ‘대학로 교통안전 사각지대’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대학 내 운전·보행자들은 일반도로에 비해 안전사고 주의력이 낮다. 경각심 제고 등을 위해 관계기관의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11일 찾은 조선대학교 한 도로에 설치된 횡단보도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워져 있다. 정성현 기자 |
정성현 기자·정상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