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정지용> K-불꽃놀이 ‘화순 적벽 낙화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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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정지용> K-불꽃놀이 ‘화순 적벽 낙화놀이’
정지용 지역문화예술발전연구소 대표
“꺼져가는 전통 문화의 불꽃을 되살리다”
  • 입력 : 2023. 10.25(수) 12:37
정지용 대표
10월 초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이번 불꽃축제에는 100만 인파가 몰려들어 10만여 발의 불꽃이 서울 밤하늘을 수놓았다. 중국, 일본, 프랑스, 한국 등의 화려한 불꽃쇼와 함께 첨단기술을 접목한 드론쇼도 펼쳐졌다.

우리의 전통 문화 중에 예로부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 고유한 방식의 다양한 불꽃놀이가 있었다. 민간에서 즐겼던 폭죽(爆竹)놀이, 횃불놀이, 딱총놀이, 불교와 민간에서 함께 행했던 낙화(落火)놀이 등이 그것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마디가 있는 대나무 토막을 불에 넣어 그것이 타면서 터지는 소리와 불꽃으로 잡귀를 쫓고 깨끗한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놀이를 했고, 정월대보름 저녁에는 횃불놀이를 하며 풍년을 기원했으며, 섣달그믐에는 유황·숯가루 등을 이용해 불꽃이 튀게 하는 놀이를 즐겼다. 우리 선조들은 단지 볼거리로만 그치지 않는 여러 가지 의미로서의 불꽃놀이를 즐겨왔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조 ‘K-불꽃놀이’이다.

이 가운데 ‘낙화놀이’는 사월 초파일과 정월대보름에 주로 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놀이 자체의 화려함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 기능적인 측면에서 공동체에 위협을 가하는 질병과 재액을 쫓고 경사를 부르는 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방식은 높은 바위 절벽에서 건초더미에 각종 재료를 더해 불을 붙여 아래로 떨어뜨리는 투화(投火)와 거리를 두고 줄을 연결한 후 줄에 소나무 껍질, 숯가루 등의 재료를 매달아 불꽃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하는 줄불놀이가 있는데 불이 떨어지면서 불꽃이 타오르고 흩날리는 광경으로 그 재미를 더 한다.

우리 지역에서도 ‘화순 적벽’에서 펼쳐졌던 낙화놀이가 있었다. 화순 적벽 낙화놀이는 적벽문화가 형성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적벽이라 명명했던 최산두(1483-1537) 이후 고경명(1533-1592)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였다. 하지만 병자호란 창의사 정지준(1592-1663)이 입향하면서 적벽 앞 장항마을(노루목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정지준은 망미정, 환학정 등 정자를 짓고 주변 지역 문인들과 교유했다. 적벽을 마주했을 때 오른편 골짜기로 올라가면 ‘한산사(寒山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는 고려 말 창건되어 1985년 동복수원지 확장 조성으로 폐사되었다. 그리고 적벽강 건너 왼편에는 백제 때 ‘유마사(維摩寺)’를 창건한 유마운(維摩雲)의 딸 보안(普安)이 건립한 ‘보안사(普安寺)’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적벽 낙화놀이는 풍류 문화와 불교 문화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세시풍속의 하나인 사월 초파일의 낙화놀이는 마을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축제가 되어 볼거리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적벽 낙화놀이는 투화방식이었다. 화순군 마을유래지에는 적벽 낙화놀이에 대해 ‘매년 4월 초파일에 하였는데 낮에 절벽 위로 서너 명이 건초를 지고 올라가 밤이 되면 한 사람은 마른풀에 돌을 넣어 불을 붙여주고, 한 사람은 던질 사람에게 전달하며, 한 사람은 몸을 나무에 묶은 후 절벽 아래로 불을 던진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뿌려지는 불꽃이 하늘을 수놓으며 떨어지다가 적벽 강물로 들어가면서 사라진다. 적벽 아래에서는 기생들이 칼춤을 추고 소리꾼은 젓대와 소리를 하였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적벽은 해발 573m의 옹성산 봉우리로부터 약 1km 서쪽에 있으며 동복수원지 확장 조성 전 절벽 높이는 80~100m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는 물에 잠겨 약 44m 정도만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100m 높이의 절벽에서 불단이 떨어지면서 사방으로 뿌려지는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수면으로 그 광경이 비친다고 상상하면 그야말로 환상적이지 않은가? 이런 광경에 풍악이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인근 지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을 것이다. 수몰 직전까지 노루목마을에서 살았던 당시 마을주민들은 적벽 낙화놀이에 대해 ‘사월 초파일, 적벽에서 떨어지는 불덩이, 수많은 인파, 풍물놀이’ 등을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렇듯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명승 ‘화순 적벽’에서 펼쳐졌던 낙화놀이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곳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산골마을에서 소박하게 펼쳐진 낙화놀이지만 불교 축제인 사월 초파일과 농한기 등에 수시로 펼쳐지면서 마을 사람들을 위로하며 이어져 왔다. 당시의 마을은 사라졌지만, 장항마을 사람들을 비롯해 인근 지역민들에게 낙화놀이는 모두가 함께 즐기는 민속놀이로 자리 잡은 행사였던 것이다.

1985년부터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던 화순 적벽은 2014년부터 부분 개방으로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또한 2017년 국가 지정 명승이 되고 난 후 적벽에 대한 관심은 더 많아졌다. 경북 안동에서는 매년 세계민속축제와 함께 하회마을 부용대에서 낙화놀이가 펼쳐지며 전북 무주에서는 반딧불축제 기간 동안 안성면 낙화놀이가 펼쳐진다. 풍부한 문화자원을 지닌 화순은 인구 145만인 광주광역시와 인접해 있다. 전국의 각지에서는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의 문화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해 화순 적벽에서의 낙화놀이를 다시 보기는 힘든 현실이다. 하지만 유사한 환경에서 적벽 낙화놀이를 재현해보고 전통 문화 복원을 통해 문화적 의미를 되찾는다면 화순의 대표적 관광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화순문화원에서는 ‘화순 적벽 낙화놀이’를 주제로 ‘2023 호남 한국학 학술대회’가 열렸으며 11월 4일 비록 적벽은 아니지만 화순읍에서 낙화놀이 재현 행사가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적벽 낙화놀이를 복원·계승하고자 하는 노력과 더불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지기 전에 민·관·학의 협력을 통한 문화관광콘텐츠로서 활성화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