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경기침체 장기화 영향으로 의류·신발 등의 소비가 큰 폭으로 줄어든 가운데 짧아진 가을, 푸근한 겨울 날씨에 가을·겨울 옷을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의류 소매업 상인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오후 임대 문구가 붙어있는 의류 매장 옆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
고물가·경기침체 장기화 여파로 소비 위축이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기후 변화로 인해 계절 의류를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의류 소매업 상인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 판매 병행이 어려운 영세 의류·신발 매장 상인들은 온라인쇼핑 시장에 한없이 밀리며 심각한 영업 부진을 겪고 있다.
13일 오전 찾은 광주 동구 충장로. 이곳에서 만난 신발 매장 사장 김기태(48)씨는 “충장로에서 신발 장사를 한 지 15년 정도 됐는데, 이제는 매장을 정리할지 고민 중”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 이후부터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데다가 지난해 말 불어닥친 계엄사태와 참사 등의 여파로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올해도 매출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물가에 옷부터 안 산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 의류·신발 소비가 줄어든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김씨는 “연말 매출은 한 해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지난해 12월에는 정국 불안 등으로 인해 특수가 없었던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매출이 하락했다”며 “고물가에 소비자들이 의류 지출부터 줄이니 차라리 매장을 정리하고 취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옷가게 사정은 더 심각했다. 지난해 여름 발생한 유례없는 폭염이 가을까지 이어져 가을옷 수요가 급감한 데 이어 겨울에도 푸근한 날씨를 보이면서 겨울옷 판매도 부진한 탓이다.
옷가게 상인 박모(51)씨는 “날씨가 매출에 영향을 준다고 느낀 건 지난해 가을부터다. 9월 중순까지 이어진 폭염에 사람들이 가을옷을 구매하지 않아 예년보다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 ‘가을이 짧으니 겨울옷을 사야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것 같은데, 막상 겨울이 왔는데도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해 겨울옷 판매량도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주부터는 전국 곳곳에 대설특보가 내려지는 등 한파가 이어졌지만, 박씨는 “앞으로도 겨울옷 수요가 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1월은 원래도 비수기인데 올해는 경기침체에 이상기후, 탄핵 정국,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겹치면서 매출이 크게 하락했다. 이미 겨울이 절반가량 지나갔기 때문에 이번 겨울 의류 매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 고물가·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이상 의류 소비가 갑자기 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가구당 의류 소비 비중은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등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290만7000원) 중 의류·신발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한 11만4000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소비지출에서 의류·신발이 차지하는 비율은 3.9%로, 분기별 통계 발표가 시작된 2019년 이래 가장 낮았다.
올해 의류 소비 역시 지난해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해 11월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2025년 소비 지출 계획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3%가 올해 소비지출을 지난해 대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 감소가 예상되는 품목은 ‘여행·외식·숙박(17.6%)’, ‘여가·문화생활(15.2%)’, ‘의류·신발(14.9%)’ 등 순으로 많았다. 소비지출 축소 이유로는 ‘고물가 지속(44.0%)’이 가장 많이 지목됐다.
온라인쇼핑 시장의 확대 역시 의류업계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지난 10년간(2014~2023년) 소매시장 변화를 살펴보면 온라인쇼핑 점유율은 2017년 17.3%에서 2023년 31.9%로, 2017년 대비 84.8% 증가했다. 온라인쇼핑 점유율에서 신발·가방 비중은 30.6%, 의복은 23.8%로, 2017년과 비교해 각각 86.8%·80.9% 증가했다.
하지만 일부 상인들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 진출이 꼭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 데다가, 의류업계 상인들이 모두 온라인 판매를 겸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인 김씨는 “온라인 판매를 같이하다가 인건비·광고비도 나오지 않아 결국 포기하게 됐다”며 “온라인 매출을 높이려면 재고를 확보해 둔 상태에서 홍보를 진행해야 하는데, 상품 10개 중 2개만 실패해도 재고와 광고비가 쌓인다. 그렇다고 소량으로 판매하면 온라인 겸업을 안 하느니만 못한 매출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특히 의류는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다. 고령층 등 온라인 진출이 어려운 상인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갑갑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또 김씨는 경기회복이 우선돼야 할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상권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상기후 문제도 크지만, 경기침체 여파가 매출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또 상권이 활기를 띠어야 오프라인 매장도 살아나는 법인데 예전에 비해 볼거리·먹거리가 줄어든 충장로에 지역민들의 발길 자체가 줄어드니 매출을 올릴 방도가 없다”며 “내수 회복·상권 활성화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소상공인들의 숨통이 트일 듯하다”고 말했다.
나다운 기자 dawoon.na@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