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일이어서 안내 겸 동행했다.
대표적인 곳들을 거치면서 그의 진지한 눈빛에 놀라다가
익산의 미륵사 터를 찾았다.
참 거대하고 섬세한 백제의 석탑이다.
긴 세월에 온전한 모습을 지켜내지 못했지만
근래의 발굴 작업 과정에서 출토된 화려한 사리장엄구와
그 안에 들어있던 금제사리봉영기로 인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이 모습은 2009년 발굴하기 직전의 자태다.
물론 이 방향에서는 지금 모습도 거의 같은 느낌이지만,
반대 방향에서는 실망 그 자체다.
발굴이나 보수도 중요하지만,
그 뒷마무리에 있어서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나름대로 고심해 적잖은 예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이 탑을 보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백제의 숨결을 찾아 이곳에 선 이 서양인 친구
기대가 컸던지 낙심한 표정이다.
그 잘났다는 우리들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듯해 쑥스러워진다.
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꼭 올라야만 빛나는 것은 아니다.
본디의 목적에 부합한 우리 안의 문화유산이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도 우리의 욕심이지 않겠는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라는 망한 지 오래지만, 백제의 들녘에 불던 바로 그 바람이런가.
인걸은 간데없어도 이 석탑은 오늘도 백제의 숨결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