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윤영백>정보공개, 참정권이 헤엄치는 바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교육의 창·윤영백>정보공개, 참정권이 헤엄치는 바다
윤영백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살림위원장
  • 입력 : 2024. 07.28(일) 17:28
어떤 행정실장은 정보를 달라면 “그냥 믿어주세요” 했다. 칸막이 의식일 수도 있지만, 아랫사람과 정보를 겸상하기 꺼리는 권위의식 탓이라 느꼈다. 소통보다 위계가 중시될수록 정보는 비대칭적이다. 비대칭 정보는 불합리한 위계의 기반인 셈이다.

모임에서 회비를 어디에 썼는지 밝히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정보는 일상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모임 건강을 위해서 좋다. 만일 누군가 이런 정보를 묻는다면, 담당자를 믿지 못하냐고 노려볼 일이긴 커녕 여러 가지로 고마운 일이다.

우선 어려움도 함께 책임지겠다는 태도여서 고맙다. 두 번째는 모임 구성원들에게 살림한 이의 수고를 알릴 기회를 준 것이니 고맙다. 세 번째는 앞으로도 투명하게 살림하도록 마음을 다잡게 하니 또 고맙다.

묻는 쪽에게도 중요하다. 우선, 자기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것 자체가 이미 기본적 권리이며, 기본권이 충족된 뒤라야 더 적극적으로 제언하고 참여할 수 있다. 즉, 그 모임의 주체로 살아가도록 북돋는다.

나라가 건강하게 운영되는 일도 결국 같은 이치.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은 1996년 제정됐다. 실제 정보공개법은 제1조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國政)에 대한 국민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한다고 제정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법을 만든 지 30년이 돼가고, 정보공개 3.0 등 정보 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호는 버전을 높여가고 있지만, 행정기관은 정보를 주는 일에 인색하다. 온갖 핑계를 대며 정보를 비공개하거나 빈껍데기 정보를 주는 일이 여전히 잦다. 그런 상황을 겪을 때면 ‘그냥 믿어달라’며 눈을 내리깔던 예전의 행정실장이 생각난다.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이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을 받았을 때, 방송국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활동할 때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 물었는데, 서슴없이 ‘돈’과 ‘정보’라고 답했다. 알지 못하면 참견할 수 없다.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는 참정권의 기반을 제공하는 일이다.

올해에만 우리 단체는 행정소송을 4건 제기했다. 모두 교육청에 정보를 공개하라는 소송이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수업 중 신입생 홍보에 동원된 현황, 사학 운영 평가결과, 허위 체험학습 신청을 유도한 후 학원 수업을 한 건에 대한 조사, 학교급식관리시스템 부조리 관련 감사결과.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로 교육청이 조사, 조치한 결과를 알려달라는 점에서 공통적.

이걸 알아야 시민단체가 몸을 가눌 수 있는데, 시간을 끌다 안 주거나, 빈껍데기만 주면 난감하다. 정보는 음식과 같아서 갓 만들어졌을 때 가장 맛있는데, 기본 처리 기간, 연장, 공개 거부, 이의제기, 재심의 절차를 거치다 보면 식어서 정보의 유통기한이 끝나기도 한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때는 근거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정보를 주라고 만든 법이니까. 그런데, 피 청구기관이 단골로 돌려쓰는 비공개 근거들이 있다.

감사 처분 결과를 물어보면, 주로 개인정보라고 안 준다. 개인정보 지우고 달라면 나머지 정보를 조합해서 추리할 수 있다고 안 준다. 그렇다면 감사결과를 공시하는 것도 모순이다. 사학 관련, 업체 부조리가 걸린 사안에는 기업 경영에 관한 비밀이라면서 안 준다. 부조리가 왜 기업 비밀인가? 공공기관이 그걸 왜 감사하고? 시민단체의 권리 남용이라 우기거나 공무원 괴롭히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공개를 거부하면 대다수는 정보를 포기한다. 그런데, 시민단체는 헤엄칠 바다가 없으면 말라 죽게 되므로 소송으로 내몰린다. 문제제기당한 업체가 보복성 고소를 걸기도 하는데, 이 경우엔 방어권을 위해서라도 정보가 절실하다.

소송은 쉽지 않다. 변호사비 아끼려면 소장도 직접 써야 하고, 접수할 때 돈도 많이 든다. 무려 4~50명 회원의 한 달 회비가 든다. 이겨야 돌려받을 수 있고, 지면 상대방 소송비까지 감당해야 한다. 비법률가로서 상대 변호사와 법정에서 맞서는 것도 버겁다.

다행히 우리 단체는 아직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일이 없다. 소장을 접수하자마자 못 준다던 정보를 피청구인이 얄밉게 바로 보내는 경우도 꽤 있다. 우리가 대단해서일까? 어차피 줘야 할 정보였기 때문일까?

법원은 정보공개를 거부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지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다. 참정권이 뛰놀 바다가 일렁여야 민주주의가 생생할 수 있음을 지각한 덕분이리라.

공공기관의 소송비용은 시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시민에게 줄 정보를 시민의 돈으로 막는 것도 심각한 부조리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정보를 공개해야 할 이유를 살피기보다 공개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기필코 찾아 뒤로 숨는 건 아닌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정보를 달라. 함께 책임질 테니. 수고했다고 칭찬할 테니.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니. 참정권이 힘차게 헤엄칠 수 있도록 물을 대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