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광주 남구 백운동 한 골목에 빛바랜 ‘여성안심귀갓길’ 표지판이 붙여져 있다. 강주비 기자 |
최근 도심 한복판서 칼부림·성폭행 등 강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경찰이 관리하는 ‘여성안심귀갓길’이 일반 골목길과 별다른 차이가 없고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21일 오전 광주 서구 쌍촌동 한 골목. 이곳은 흔히 말하는 ‘원룸촌’으로, 큰길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다.
이날 역시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는 한낮임에도 골목을 지나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골목 사이사이 들어선 상가들에는 ‘임대’ 안내가 붙어 있거나 문을 열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한적했다. 인적이 끊긴 저녁 시간대에는 걷기가 꺼려질 정도로 한산했다.
한참 걷다 보니 전봇대 옆에 ‘방범용 CCTV 작동중’이라는 노란색 표지판이 보였다. 10분가량 걸으며 유일하게 발견한 CCTV였다.
기둥에는 CCTV통합관제실과 연결되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었지만, 주차 차량과 쓰레기 더미에 둘러싸여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곳은 경찰이 공식 지정한 ‘여성안심귀갓길’이다. 여성안심귀갓길이란 지난 2013년 도입됐으며 원룸 밀집 지역, 재개발 구역 등 범죄 위험·불안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경찰이 방범 시설 확대 및 순찰 강화 등을 목적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상당수가 눈에 띄는 표지판이나 방범 시설이 없어 주민들은 이곳이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 김모(23)씨는 “3년째 이곳에 사는데,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걸 몰랐다”며 “집이 근처여서 무조건 이 골목을 지나야 하는데, 저녁에는 무서워 지인과 통화를 하면서 간다. 최근 묻지마 범죄가 자주 발생해 더욱 불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안심귀갓길도 상황은 비슷했다.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된 광주 남구 백운동 한 골목엔 ‘이곳은 여성안심구역으로 순찰강화구역입니다’는 작은 표지판이 붙어있었지만, 가까이 가야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빛이 바랜 상태였다.
이곳 역시 CCTV 기둥에 붙은 비상벨은 재활용 의류 수거함에 가려져 찾기 어려웠다.
대학생 신모(20)씨는 “저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112’가 적힌 안내판을 붙여놓는다고 안심되지는 않을 것 같다. CCTV는 다른 거리에도 있지 않나. 비상벨 같은 걸 구석구석에 설치하는 등 딱 봐도 ‘이곳이 여성안심귀갓길이구나’ 알 수 있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21일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된 광주 서구 쌍촌동 한 골목 CCTV 기둥에 비상벨이 설치돼 있지만, 주변에 주정차된 차량과 의류 수거함 등으로 인해 식별키 어려운 상태다. 강주비 기자 |
타 지자체가 여성안심귀갓길 구간에 50~70m 간격으로 형광도료를 활용한 노면표지를 설치해 시인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큐브 모양의 LED안내판을 통해 야간에도 어느 방향에서든 신고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한 곳도 있다.
광주경찰은 여성안심귀갓길 관리·확장을 위한 예산이 충분치 않아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광주경찰 관계자는 “방범시설 설치는 경찰 예산만으로는 부족해 지자체와 협조하고 있다. 관할서의 범죄예방진단팀이 현장에 나가 필요성을 진단, 방범 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지자체에 요청한다. 경찰한테는 여성안심귀갓길이 ‘필수’지만 지자체에선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예산을 많이 투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 관련 예산은 1년에 2억원 수준이다”며 “노면 표시의 경우 본청 지침에 따르면 관리가 힘들고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됐다 해제됐을 경우에 지우는 데에도 예산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1회씩 CCTV 비상벨 작동 여부 등을 현장 점검하고, 범죄 예방 시설이 갖춰지거나 개발이 완료돼 안심귀갓길 기능이 필요 없는 곳을 해제하거나 반대의 경우 신규 지정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해당 노선에 대해 각 관할서가 순찰을 집중·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