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시명>막걸리가 만들어 낸 신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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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협·지발위
기고·허시명>막걸리가 만들어 낸 신풍속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 입력 : 2022. 05.30(월) 11:10
  • 김은지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에서 가까운 곳에 이대앞양조장이 있다. 막걸리학교 상급과정에 참여한 10명이 합심해 만든 곳.

공간은 10평 남짓, 월세는 100만원으로 참여자 10명이 주주가 되고 직원이 됐다. 10명의 주주는 본업이 따로 있다. 그 중 한 명이 본업을 버리고 양조로 전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는 않는다. 모두 안정된 직장이나 직업을 갖고 있어서다. 양조는 그들의 삶에서 주말 같은, 여유 공간으로 기획됐다.

창업은 지난해 7월 했으며 첫 제품이 지난 4월 출시됐다. 첫술 이름은 'The Lazy Dancing Circle'이다. '게으른 춤꾼 동아리'쯤 된다. 막걸리 도수가 낮고 부드러우며 슬로푸드 기질을 갖고 있으니 어울리는 이름이다.

첫 제품 출시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술 소매상과 한국술전문주점 운영자들이 먼저 알아봐줬다. 주문 요청이 인스타로 이어졌고 술은 금방 동이 났으며 다시 만들고 있다. 술 주문이 이어지니 안 팔리면 어떡하나 하는 근심은 사라지고 이제 술 담그느라 어깨와 허리가 아프지만 콧노래가 절로 난다.

참여자은 남자 5명, 여자 5명이다. 대표는 영국 런던에 막걸리양조장을 만들기 위해 한국에서 인큐베이팅 차원에서 참여했다. 제주도 구좌읍에 막걸리양조장을 짓고 싶은 이는 구좌막걸리를 만들었다. 법인회사에 다니는 신혼의 여성은 신랑의 지지를 받아 양조에 참여하고 있다. 직원도 없이 막걸리 양조장이 운영이 가능할까를 걱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양조장은 사람보다도 미생물이 더 일을 많이 한다. 고두밥을 짓고 누룩 섞어 술담금하는 일은 한 나절이면 된다. 알코올 발효는 효모라는 미생물이 10일~20일 일한다.

참여자들은 적금하듯이 술을 빚고 거기에 이자가 붙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발효의 끝을 기다린다. 발효가 끝나면 발효통 온도를 5도 낮춰 술을 안정시킨다. 국세청에 신고한 알코올 도수에 맞춰 술소매점이나 주점에 내보낸다. 참여자들마다 이름 지어놓은 술들이 출시될 날을 또 기다리고 있다.

인스타나 유튜브 등 1인 매체가 생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현대 사회는 너무 많은 정보들로 끊임없이 나를 고립시킨다. 직장이 있다지만 그곳이 나의 독립된 공간은 아니다.

그런데 술은 좀 색다르다. 지인이 찾아올 때쯤이면 내가 만든 술은 촛불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그것을 마시며 이야기하면 된다. 술에 대한 예의로 대화의 첫 주제는 '내가 만든 술'에 향해 있다. 함께 나눌수록 행복의 양이 커진다. 내가 만든 술이 그 속에 들어 있다. 그게 막걸리라서 가능하다.

막걸리는 할머니가 만들었고 마을에서도 만들었다. 소주와 맥주는 공장에서 만든 것밖에 모르니 핸드메이드, 수제품이 되는 줄을 모른다.

막걸리는 수제품이고 부엌이 제조장이었다. 그래서 막걸리를 만들 꿈을 꾸고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 제도가 생기면서 작은 양조장을 만들어 생의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이도 생겨났다. 막걸리가 만들어낸, 현대 시대의 새 풍속이다.

김은지 기자 eunzy@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