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63-4> 장애인 '한표' 여전히 멀다… "완전한 이동권 보장을"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일주이슈
일주이슈 63-4> 장애인 '한표' 여전히 멀다… "완전한 이동권 보장을"
20년 넘는 이동권 투쟁에도||투표함까지 가는 길 '험난'||광주서도 차별투표소 65%||"후보들 이동권 요구 수용을"
  • 입력 : 2022. 05.22(일) 18:49
  • 최황지 기자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가 지난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장애인의 지역사회 완전한 통합과 참여보장을 위한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배영준 활동가 제공

"장애인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지는 거소투표(투표소에 직접 가지 않고 투표하는 방법)는 최선의 방법이 아닙니다. 비장애인들이 선거 당일에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인 만큼 장애인에게도 국민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완전한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겁니다."

올해는 전국민의 정치이벤트인 3·9대통령선거(대선)와 6·1지방선거까지 나란히 열리는 '선거의 해'다. 모두에게 평등한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들에겐 참정권의 벽이 높기만 하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투표소까지 잘 갈 수 있을지'가 고민인 장애인들은 수십 년 간 이어진 이동권과의 지난한 싸움에서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광주장차연)의 배영준(사진) 상임활동가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동이 이뤄져야 투표할 수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이동권은 평등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완전한 이동 서비스 보장'을 주장했다.

전국에서 열리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는 21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왔다. 그 사이 대선,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까지 5번씩 치러졌지만 장애인들의 '한표' 행사는 여전히 멀다.

광주장차연 등이 주관한 '제20대 대통령선거 장애인 참정권 차별 모니터링 결과보고서'는 장애인들의 투표권 행사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대선 사전투표일부터 본투표 당일까지 광주 남구, 동구, 북구에 위치한 23곳의 투표소 중 65%인 15곳에서 지체장애와 발달장애인 유권자에게 '차별적 요소'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 사례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동선이 가장 많았다. 그 중에선 투표소가 1층이 아님에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아 휠체어 사용자의 투표소 접근이 불가능한 사례도 있었다.

배 활동가는 "장애인에게 이동권이란 투표소에 도착하고 기표소까지 간 뒤, 투표를 하고 나오는 것까지를 말한다"며 "활동지원사들이 뒤에서 밀어주더라도 계단이 있거나 경사로가 가파르면 투표를 할 수가 없다. 비장애인의 당연한 삶이 장애인에겐 당연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동권 침해 사례뿐만이 아니다. 모든 투표소에는 기표 보조 용구로 손목에 감는 방식으로 기표할 수 있는 밴드형, 입에 물고 기표할 수 있는 마우스피스형, 확대경, 점자형 등이 필히 비치돼야 하지만 거의 모든 투표소가 이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배 활동가는 전했다.

배 활동가는 "사전 투표 때 (이같은 편의시설이 불충분해) 투표를 못하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다른 투표소로 이동할 수 있지만 본투표 때는 참정권을 포기하는 셈이다"며 "설령 다른 투표소로 가더라도 해당 장소에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지는 모른다. 선거 안내 책자에 편의시설 확충 유무가 다르게 표기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정치 참여 문턱을 낮추기 위해선 더욱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되고 실행될 필요가 있다. 각 후보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말로 된 선거 공보물을 제작하는 것, 투표용지의 투표칸을 좀 더 넓게 만들거나, 각 정당을 눈에 띄는 그림으로 표시하는 그림 투표 용지 도입 등이 그 예다.

배 활동가는 장애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선거를 만들 수 있도록 정치권이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 활동가는 "경사로를 만들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 등은 장애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며 "선거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공보물을 만드는 것 등도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노약자, 임산부, 몸이 불편하신 분, 사회적 약자까지 많은 분들이 쉽고 편안하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다"고 말했다.

광주 장차연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시장에 출마하는 다섯명의 후보자들에게 장애인 정책요구안의 구체적인 답변서를 요청했다. 대다수 후보들이 적극적 수용과 검토하겠다는 답변서를 보내온 만큼 향후 광주시정을 이끌 수장이 책임있는 시정으로 장애인 인권 증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활동가는 "사회적 약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치는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며 "장애인이 100%를 원한다면 적어도 50% 정도는 지원해줬으면 한다. 좋은 복지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복지다"고 말했다.

최황지 기자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