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주 수도인 올버니 극장 뉴욕 주 수도인 올버니 극장 외관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보려고 올버니 주청사 앞에 몰려든 사람들 벽화가 있는 맨해튼 거리 뉴욕시티 지하철 맨해튼에서 올버니로 가는 길 전 세계의 주요 뉴스는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19와 관련된 것들이고 생활 속 규칙들도 이와 관련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행자가 경험하는 뉴욕에서의 미시적인 정책들은 너무 자유롭거나 되레 갑작스럽게 규제되기도 한다. 몇 가지 상황을 나열해보기로 한다. 첫째 코로나바이러스19 검사 비용이다. 뉴욕시티에 도착하고 6일째인 7월 2일 맨해튼에 있는 사설 코로나 검사소인 CityMD로 향했다. 실은 미국에서는 자가 격리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할 강제성은 없다. 여행자라고 따로 관리받지는 않는다. 7월 6일 기사에 '홍정욱, 코로나 전체주의 K방역 직격 논란'이라는 기사가 떠오르는 대...
편집에디터2021.07.15 11:13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타워에서 바라본 뉴욕 시. 차노휘 1) 입국심사 6월 27일 14시간 운항 끝에 도착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자가 격리를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행 목적은 무엇인지 등은 입국 심사 할 때 묻지 않았다. 어느 곳에 머물 것인지, 가방에 금지된 음식물을 가지고 왔는지 등 아주 사소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두 눈과 열 손가락 지문을 찍은 뒤 통과시켰다. 40분 동안 심사 줄에 서서 준비한 서류(백신 접종 확인 문서, 출국 72시간 안에 PCR 음성 확인 문서, ESTA) 등을 잘 챙겼는지 다시 확인을 했던 나였는데 그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공항 바깥은 호객행위만 없지 카이로 국제공항처럼 어수선했다. 캐리어를 두 개나 끌어야했던 나는 노란 택시 대신 좀 더 쌀 것 같은 우버 택시를 호출했다. 숙소까지 25km 65달러라는 예상 금액. 하지만 ...
편집에디터2021.07.01 16:29엉앙길. 차노휘 1) 수월봉과 녹고물 옛날 옛날 고산리에 효심 깊은 남매가 살았다. 누이 이름은 '수월', 남동생은 '녹고'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들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앓아누운 뒤로는 그만 웃음이 사라져 버렸다. 용하다는 의원도 손을 놓고 '몹쓸 병이 도질 징조'라면서 두려워했다. 어느 날 남매의 소식을 먼 곳에서 듣고 온 불심 깊은 스님이 묘법을 일러주고 갔다. "일백 가지 약초를 한데 모아 달여 드려야 나을 수 있다네." 스님의 말을 듣고 난 다음부터 남매는 백 가지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백록담에서 마지막 약초를 재취하고는 그동안 캐온 것들을 한데 모아서 살폈다. "이럴 수가? 하나, 하나가 부족해. 오갈피야. 오갈피가 없어." 뒤늦게 한 가지가 부족한 것을 안 남매는 오갈피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매었다. 마침내 수월봉...
편집에디터2021.06.17 15:05모슬봉에서 바라본 산방산. 차노휘 1) 장소 그리고 '나' 사람은 자신이 사는 곳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거주하고 있는 곳의 영향은 상당하다. 그래서 장소는 단순히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듯' 그 사람이 누구냐에 관한 것이 된다. 그만큼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은 신중을 요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사회문화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암암리에 '그 사람을 변화시켰을 그 무엇'을 염두에 두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다. 실제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바람이 너무 심해 '못 살 곳(못살포)'이라고 불렀던 모슬포에서 바람의 길을 따라 모슬봉에 올라 저 멀리 산방산과 형제섬을 바라봤을 때에도 분명 나를 좌우하고 있는 것은...
편집에디터2021.06.03 15:23송악산 둘레길에서 바라본 산방산. 차노휘 1) 옥황상제의 엉덩이에 꽂힌 화살 그리고 산방산 "에끼, 요놈! 내가 누구라고?" 잔뜩 화가 난 옥황상제가 바로 앞에 있는 산봉우리를 덥석 뽑아 사냥꾼을 향해 던졌다. 옥황상제가 화가 난 것은 한 사냥꾼 때문이었다. 그 사냥꾼은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사슴을 향해 화살을 쏜다는 것이 빗나가서 그만 그곳으로 마실 나왔던, 그것도 너무 급한 나머지 숨어서 볼 일을 보고 있던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맞혀버렸다. 옥황상제가 화가 난 것은 당연했다. 화풀이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졌지만 날렵한 사냥꾼은 잘 피했다. 뽑힌 봉우리가 날아가고 날아가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가서 꽂혔다. 그때부터 한라산은 봉우리 대신 움푹 들어간 백록담이, 서쪽 바닷가에는 밥그릇 모양 봉우리가 생겼다. 백록담 아래 둘레와 엇비슷한 서쪽 바...
편집에디터2021.05.20 16:24박수기정이 보이는 대평포구, 차노휘 제공 1) 용왕난드리와 박수기정 대평포구와 화순금모래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제주올레 9코스는 도상 거리 6.7km이다. 거리가 짧지만 난이도는 '상'이다. 대평포구에서 좁은 돌밭 숲길을 따라 박수기정까지 올라가서 또다시 월야봉(200.7m)을 산행해야 한다. 평소에 등산을 했던 사람이라면 괜찮지만 초행길이면서 늦은 오후에 이 코스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위험할 수 있다. 오름을 오르는 내내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의만 기울인다면 독특하고 험한 지형인 이곳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알찬 걷기가 될 것이다. 먼저 대평포구에 이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광경과 마주한다. 높이 130m, 길이 약 1,500m에 이르는 병풍 모양 주상절리이다. 그곳을 '박수기정'이라고 부른다. '바...
편집에디터2021.05.06 16:36약천사 경내 너머 서귀포 앞바다. 제주 불교 수난사 올해가 제주4·3항쟁 73주년이다.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대회'에 참석한 제주도민에게 경찰이 발포한 사건에 항의하는 활동에서부터 시작되어,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는 시기까지의 기간 동안 국가 공권력에 제주도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당시 제주 사찰 또한 거의 전소되었다. 사찰 피해 시기는 1948년부터 1949년에 걸쳐 주로 이루어지는데 토벌대의 무자비한 학살과 방화가 자행되던 초토화 작전 때였다. 승려들의 인명 피해도 물론 컸다.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피해는 제주불교의 오랜 후유증이 되었고 건물 또한 재건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제주 사찰 건물 나이는 다른 지역에서 비해서 비교적 젊다. 제8코스 시작점인 달을 품은 월평마을의 아왜낭목...
편집에디터2021.04.22 14:3048-1. 외돌개 1) 강정(江汀)마을 플래카드 걷기를 마치고 숙소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제2공항 찬반 여부를 화제에 올린다. 어떤 분은 당사자는 말을 아끼는데 외부인이 더 난리다고 하는가 하면, 자연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의 모든 도로가 외길인 하와이에는 더 사람들이 몰린다며 제주도의 지나친 난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한 이도 있었다. 제7코스에 있는 강정마을에 들어서면 범상치 않은 입구와 마주한다.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 찬(찼을) 문구들이 길거리 건물을 온통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돌개 주차장 너머 '폭풍의 언덕'에서 마셨던 달콤한 커피 맛을 떠올릴 수도, 외돌개를 바라보며 걸었던 아찔한 해안절벽 산책로의 아름다움마저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몇 년 전과 달리 미군 해군 기지 반대 피켓이 많이 사라졌다. 세월이 사람들...
편집에디터2021.04.01 17:1147-1. 위미항 포토존에서 1) 물집이 잡히는 이유 전날에 25km를 걸었다. 그 전날에는 20km. 드디어 물집이 잡혔다. 소천지를 지날 때 오른쪽 발가락 통증이 일어서 양말을 벗었더니 물집뿐만 아니라 발톱 하나가 빠지려는지 피가 묻어있었다. 발톱 2개 정도는 빠져줘야 걸었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몇 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the Way of St. James;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에 위치한 기독교 순례길 800km)을 걸을 때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물집 잡히는 것은 걷는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쉬면서 양말을 벗고 열을 식혀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강행하기 때문이다. 실은 운동화를 조깅화로 가지고 왔다. 첫 번째 올레길 여정을 8일 정도 잡았다. 긴 여정이 아니라...
편집에디터2021.03.18 11:5746-1. 올레길 제4코스에 있는 가마등대(최초점등 1984년 12월 24일) 1) 설문대할망 전설과 제4코스 시작 표선(表善)해수욕장 옛날 제주도에 설문대할망이라는 거인할머니가 살았다. 할머니는 한라산보다 더 커서 아무리 깊은 바다라 해도 무릎 정도 깊이밖에 안됐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한 발은 성산일출봉에, 다른 발은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야 했다. 빨래도 관탈섬에 놓고 팔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문질러 빨아야 했다. 제주의 360여 개의 오름은 설문대할망이 예기치 않게 만든 것들이다. 그녀가 제주도를 만들기 위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터진 구멍으로 조금씩 새어 나온 흙이 쌓여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것이 한라산이다. 올레길 제3코스 마지막이자 제4코스 시작점인 표선 해수욕장도 설문대할망의 작품이다. 표서면...
편집에디터2021.03.04 11:2345-1. 신풍신천바다목장 올레길 1) '눈'이라는 붓! 눈보라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올레 리본만 따라가면 몇 시간 지나서 종점에 이를 것이다. 제3코스로 드디어 뛰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주민들과 올레 탐사 팀들이 새롭게 개척했다는 연듸모수 숲길을 10분 정도 걸었을 때였다. 리본이 자취를 감췄다? 소나무 숲과 간간이 보이는 밭 그리고 시야를 가리는 눈발. 잠깐 멈춰 서서 네이버 지도를 보며 위치를 가늠했다. 그때였다. 연두색 야광 방수 바지를 입은 올레꾼이 곤경에 빠진 주인공을 구하러 오는 산신령처럼 등장한 것이. 하지만 그도 나처럼 길을 잃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본 리본이 있음직한 곳으로 되돌아갔다. 역시나, 숲과 밭을 경계 짓는 임도로 내내 안내했던 화살표가 90도 각도로 방향을 바꿔 울창한 숲길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일정한...
편집에디터2021.02.18 11:4344-1. 비현실적인 풍광을 연출하는 혼인지 1) 제2코스를 생기 있게 해주는 빗방울 "그러면 그렇지, 이 정도는 뿌려줘야지." 제2코스 대수산봉(大水山峰, 137m)을 내려와서 중산간 밭길을 걸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자 내가 되레 신이 났다. 잽싸게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입었다. 비의 전조는 한 시간 전부터 있었다. 3시부터 내린다는 일기예보와 달리 먹구름이 정오가 되기 전부터 11시 방향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의외로 비가 밋밋한 길에 생기를 주었다. 제1코스 종점이자 시작점인 광치기 해변에서의 출발은 평안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19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제주형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행정조치에 따른 주요 관광 명소 출입금지(2020년12월24일~2021년1월3일)' 시행에 따라 '꽤 괜찮은 오름'까지 올라갈 수 없게 했다. 제2코스 첫 오름인 식산봉(食...
편집에디터2021.01.28 11:0843-1. 중간스탬프가 있는 목화 휴게소 도로변에 널린 한치들. 한때는 제주도가 외국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는 것, 과거의 나에게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16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해서 그해 겨울 올레길을 완주할 때까지도 그랬다. 낯선 동네(?)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동시에 느껴지던 야릇한 설렘, 초보 '걷기'의 순수한 각오 같은 것들. 나는 제주올레 패스포트를 2년 전에 이미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언제 다시 걸어야지, 라는 막연한 다짐 때문이었다.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19 여파로 해외 도보여행이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좋은 기회였다.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배낭을 꾸려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올레길의 역사 '올레'는 집 앞 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좁은 길'을 말한다. 제...
편집에디터2021.01.14 11:2142-1. 황토밭에 고구마 순 심기. 일하면서 사진 찍는 것도 그때는 사치스러웠다. 1. 터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터키에 관한 이야기는 쓰면 쓸수록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공교롭게도 연재를 마치는 지금, 터키를 여행하고 귀국할 때와 코로나 상황은 비슷한 것 같다(아니 애초부터 변한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를 잠깐 언급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올해 1월, 터키에 도착했을 때는 코로나바이러스19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중국인은 입국 금지였다. 귀국하기 3일 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연이어 확진자 숫자가 무섭게 치솟았고 이 모든 소식은 세계가 공유하는 듯했다. 평상시 이스탄불 시내에서 트램이나 페리를 탈 때면 동양인은 '나' 혼자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어떤 시선에도 개의치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고 ...
편집에디터2020.12.30 12:3241-1. 위스퀴다르에서 바라본 마이덴 타워. 1. 슬픈 처녀의 성 귀국 며칠 전이었다. 그동안 이스탄불에 머무르면서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생각했지만 일종의 마무리 같은 이벤트가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현지인 가이드가 진행하는 나이트 워킹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날짜는 이틀 뒤인 일요일이었는데 가이드는 금요일 밤 날씨가 너무 좋다면서 바로 '오늘' 투어를 하자고 했다. 그는 일요일에 눈이 올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20리라를 주고 산 목도리를 두르고 애미뇌뉘 항구로 향했다. 메디컬 센터에서 근무하지만 가끔 여행객을 위해서 3~4시간 동안 시내 투어를 한다는 20대 중반 가이드 이름은 아흐메드였다. 그와 애미뇌뉘에서 페리를 타고 아시아 지구인 위스퀴다르로 향했다(원래는 5~10명 정원인데 코로나바이러스19 영향으로 1:1 투어가 되었다). 이곳 선착장...
편집에디터2020.12.10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