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온 소리꾼들 전통문화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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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프랑스에서 온 소리꾼들 전통문화관 들썩였다
재불단체 K-vox의 '유러피언 K-풍류 한국소리전'
불어 판소리에 관객 '갸우뚱' 익살스런 몸짓엔 '웃음'
외국인이 본 판소리 매력은 '표현력'과 '한의 정서'
한유미 대표 "판소리 대중화ㆍ세계화에 앞장 설 것"
  • 입력 : 2016. 03.07(월) 00:00
지난 5일 광주 동구 운림동 전통문화관 서석당에서 열린 한국소리페스티벌조직위원회(K-vox)의 '유러피언 K-풍류 한국소리전'에서 독일인 안나 옛츠 씨가 판소리를 하고 있다. 배현태 기자 htbae@jnilbo.com
"놀부 알아요?" 프랑스인 소리꾼 에르베 페조디에 씨가 객석을 향해 외치자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에르베 씨가 프랑스어로 흥보가 중 '화초장' 대목을 줄줄 외기 시작한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어떤 내용인지는 다 아는 관객들. "얼씨구~" 추임새와 박수로 화답하니 에르베 씨도 더욱 열을 올린다.

지난 5일 광주 동구 운림동 전통문화관은 푸른눈의 소리꾼들을 보기 위해 몰린 100여명의 방문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소리페스티벌조직위원회'(이하 K-vox)가 꾸민 '유러피언 K-풍류 한국소리전'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서석당 안은 발디딜 틈 없이 가득차 뒤늦은 관객들은 맨 뒤에서 까치발을 하고 공연을 보는가 하면 아예 공연장 바깥에서 창을 통해 들여다 보는 이도 있었다.

이날 무대의 주인공들은 독일, 벨기에, 프랑스에서 온 6명의 '백안(白顔)'의 소리꾼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회 K-vox 유러피언 아마추어 소리꾼경연대회' 수상자들. 장구와 북, 꽹과리와 징을 들고 펼친 '비나리' 무대, 조금은 서툰 한국어로 부르는 민요는 그럼에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관객들은 연신 "얼씨구 좋다!"를 외치며 추임새를 넣어줬다. 그들이 단지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국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진 까닭.

K-vox의 음악감독인 에르베 페조디에 씨는 프랑스어로 판소리를 하는 특색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한복을 차려입고 부채를 펼치며 목청을 돋우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리꾼. 그러나 그의 입에서 한국어 대신 프랑스어가 쏟아져 나오자 한 관객은 "뭔 말인지 알 수가 있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에르베 씨가 수궁가 중 '토끼화상' 대목을 외면서 엉덩이에 주먹을 대는 등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토끼를 묘사하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안나 옛츠 씨와 바질 뒤피옹 씨가 각각 성춘향과 이몽룡을 맡아 부른 춘향가 중 '사랑가'는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안나 씨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바질 씨의 줄기찬 구애에 교태를 부리는 안나 씨의 모습에 객석에서는 "오매 잘한다!"는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관객 서문자 씨는 "한국 소리꾼들보다 실력에서는 떨어지겠지만 외국인들이 저렇게 한국어로 하는 걸 보니 참 열심히 준비했구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들 국악에 애정을 지닌 외국인 소리꾼들을 모은 구심점은 K-vox였다. 극작가이자 인류학자인 프랑스인 에르베 페조디에 씨와 1996년 프랑스로 건너간 한국인 한유미 씨가 판소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목적으로 만든 한ㆍ불 문화예술단체다. K-vox의 K는 한국을 vox는 라틴어로 '소리'를 뜻한다.

대표를 맡고 있는 한유미 씨는 프랑스에서 판소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따금씩 프랑스 무대에 오르는 판소리 공연에 자막을 넣는 작업을 해왔다. K-vox를 본격적으로 구상하게 된 건 2007년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민혜성 소을소리판 대표를 만나게 되면서다. 한 대표는 "당시 한국문화원에서 해마다 열흘 정도 무료 판소리 교습을 진행했다.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1년 후에나 배울 수 있어 지속적인 교육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한 판소리 워크숍을 진행해왔고, 2013년부터는 국악공연과 경연이 어우러진 페스티벌로 발전된 '유러피언 K-풍류 한국소리전'을 개최하고 있다. 매년 경연에서 우승한 출연자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소리가 어떻게 전승되는지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등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평생교육원'과 비슷한 개념이기에 참가자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독일인 안나 옛츠 씨는 현재 영국 SOAS대학 음악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벨기에인 바질 뒤피옹 씨는 재즈 드러머다. 프랑스인 빅트린 블라보 씨는 문화정책가, 에티엔 앙드레 씨는 고등학교 교무처장, 솔렌 드콕크 씨는 무용가다.

이들이 느끼는 판소리의 매력은 무엇일까. 안나 씨는 "소리의 표현력만으로도 몰입이 가능한 게 판소리"라고 말했다. 바질 씨는 "여수엑스포 때 판소리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며 "그때 판소리가 주는 아름다움과 깊은 울림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에티엔 씨는 '한(恨)'의 정서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흑인 노예들의 음악에 든 '한' 같은 걸 좋아한다. 언젠가 한국에 왔다가 라디오를 통해 국악 방송을 들은 게 판소리를 즐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유미 K-vox 대표는 "한국에서 주는 관심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부담되기도 한다"며 "오는 가을에 벌써 4회 경연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계속해서 프랑스에서 판소리를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판소리를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정대 기자 jdkim@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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