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치적 고향 '역경의 세월'… 꽃피운 문예 '목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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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치적 고향 '역경의 세월'… 꽃피운 문예 '목포의 눈물'
호남인맥 목포<상>
일제 수탈~ 군부독재시절까지
소외와 아픔 겪으며 낙후
입신양명 위해 맨주먹 상경
  • 입력 : 2014. 06.09(월) 00:00
첫째줄 최봉인 전 재경광주전남향우회장, 박지원 의원, 천정배 전 의원, 부좌현ㆍ김미희 의원, 권노갑 고문, 전해철 의원(왼쪽부터). 두번째줄 서기호 의원, 이매방 명인ㆍ최청자 교수, 최영철 감독ㆍ가수 최유나씨(왼쪽부터). 마지막줄 하철경 회장, 문학평론가 황현산씨, 가수 남진씨, 개그맨 배동성씨, 국악인 박애리ㆍ오정해씨(왼쪽부터). 배경 사진은 1930년대 목포 전경. 뉴시스ㆍ전남일보 자료사진ㆍ목포시 제공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로 대변되는 도시 목포(木浦). 목포는 1897년 개항된 이래 숱한 역경을 겪으며 성장한 도시다. 일제시대 목포항은 식민지 수탈항으로 활용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해방 이후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엔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이유로 경제 개발에서 소외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근래 인근에 전남도청이 위치하고 무안국제공항,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대교 등이 갖춰지면서 서남권의 중심도시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목포가 언제부터 목포라고 불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순신 장군이 진을 쳤던 고하도가 목화의 집산지라서 이곳에서 생산한 목화를 일본으로 실어 날랐기 때문에 목화의 항구라는 뜻의 목포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영산강 물과 서해 바닷물이 합쳐지는 이곳의 지형이 마치 '길목쟁이' 처럼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해 '목개'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옮겨서 목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흔히들 목포를 호남선의 종착역이라고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대륙을 향해 진출하는 출발점이다.

목포가 갖는 의미는 지리적 위치 만큼이나 우리나라 인재의 관문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전남 서남권에서 모여든 인재들을 가르치고 육성한 인재의 산실이었다.

목포를 중심으로 인근 군(郡)지역 우수한 인재들이 일찌감치 부모 품을 떠나 목포로 유학,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을 키웠던 곳이다. 신안ㆍ무안ㆍ영암ㆍ진도ㆍ해남ㆍ완도ㆍ강진 등지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목포로 모였다. 목포와 좀 떨어진 영광ㆍ장흥ㆍ나주 쪽 인재들도 목포로 모여 들었다. 그 중심에는 목포지역 초ㆍ중ㆍ고가 큰 역할을 했다. 해방 이후 목포의 인재들이 주로 진학한 초등학교는 구도심에 위치한 북교초등, 유달초등 등이다. 중학교는 목포중, 유달중(당시 목포 이중) 등이 우수 인재를 모았고 고등학교는 목포고ㆍ문태고ㆍ목포상고ㆍ목포공고 등이 있다. 목포 출신 가운데는 초ㆍ중ㆍ고를 목포에서 졸업했지만 실제 출신고향은 목포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기사 중 실제 고향은 괄호 안에 표시).

고교 입시가 존재하던 시절엔 단연 목포고가 두각을 나타냈다. 목포중ㆍ고를 거친 학생들은 상당수가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에 남아 수도권에서 전남 서남권을 대표하는 인재들로 성장했다. 물론 당시 대학이 있던 광주로 진출한 숫자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로 진출한 목포 출신 '청춘'들은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등을 통해 관계, 법조계, 언론계, 재계, 문화예술계, 군(軍)계, 그리고 정치계 등으로 진출해 전국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로 성장했다. "목포 출신 유명인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는 말이 그래서다. 이처럼 목포는 전남서남권 교육센터의 역할을 했다. 이런 이유로 목포 출신 서울 진출자는 타지역에 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맨주먹 상경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목포는 김대중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동교동계의 고향으로 정치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6명을 배출(인근 군 출신 포함)할 정도로 한국 문화예술계의 거목들이 많이 나왔다.

●정치계

이른바 동교동계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출신 거물급 정치인들은 많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신안 하의도ㆍ목포상고),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고문(목포상고ㆍ동국대),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신안 도초ㆍ목포중ㆍ목포고 8회)등이 있다. 현역의원으로는 박지원(진도ㆍ문태고) 국회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부총리ㆍ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최영철 현 서경대 총장(완도)도 목포서 초등을 나와 목포중ㆍ고,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이다. 전 헌법재판관을 지낸 조승형 국회의원도 목포북교 초등, 목포중ㆍ고를 나왔다. 천정배(신안 암태)ㆍ유선호(영암) 전 의원도 초등부터 목포에서 살았고, 목포고 출신이다.

현역 의원으로는 새정치민주연합 부좌현(경기 안산시단원구을) 의원이 목포중ㆍ목포고 24회이고, 정의당 비례대표 서기호 국회의원도 목포고 37회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경기 안산시상록구갑) 의원도 목포가 고향으로 영흥중 출신이다. 여성으로는 통합진보당 김미희(경기 성남시중원구) 의원이 목포여고를 졸업하고 서울 약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전 의원으로는 김정균(목포고 8회ㆍ연세대 정외과ㆍ공화당 전국구), 민병초(해남ㆍ목포중ㆍ서울 중앙고) 등이 있다.

●문화예술계

목포는 문화예술의 요람이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6명이나 배출했기 때문이다. 예술원 회장을 역임한 차범석, 서양화가 김환기(신안), 여류소설가 박화성, 한국화 남농 허건,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상 작고)이 있고, 현재 생존해 있는 예술원 회원으로는 우리나라 무용계에서는 유일한 최청자 세종대 석좌교수가 있다. 최 교수는 목포 중앙초등과 중앙여중ㆍ목포여고를 거쳐 서울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 무용학과를 졸업했고 1980년에 '툇마루 무용단'이라는 국내 유일의 민간무용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한국무용학회 회장 등 우리나라 현대무용계의 대부다.

예술원 회원은 되지 않았지만 예술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도 많다. 살풀이춤의 대가 이매방 선생, 한글 서예의 대가 평보 서희환 선생 등이다. 서희환 선생은 1968년 국전사상 전무후무하게 한글서예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박화성 씨의 장남인 천승준, 차남 천승세('만선')씨 등도 문학평론가와 소설가로 유명하고, 셋째 천승걸(목포중) 씨는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를 오래했다.

문학평론가 김현, 진보적 문학평론가 황현산 씨 등도 목포 출신이다. 현존하는 한국화가로 목포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최근 목포로 삶의 터전을 옮긴 전정 박항환 선생과 한국예총회장인 하철경(이상 진도) 선생 등이 어릴 적부터 목포에서 화업을 쌓았다.

가수로는 이난영ㆍ남진을 빼놓을 수 없고, '흔적'의 최유나(해남)가 목포여고 28회다. 개그맨으로는 목포 덕인고 출신 배동성이 있다. 연예인 겸 국악인으로는 서편제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오정해 씨가 목포 출신으로 초ㆍ중ㆍ고를 목포에서 다녔다. 요즘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박애리도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하고 KBS 국악대상을 수상한 인재다.

음악가로는 최영철(63) 서울오라토리오 감독이 있다. 목포중ㆍ고를 졸업한 최 감독은 1991년부터 서울오라토리오 합창단, 오케스트라, 드보르작 아카데미 등을 차례로 설립했다. 체코 프라하 음악원/드보르작 음악원 감독 겸 교수를 하고 있는 최 감독은 체코 정부로부터 실버 메달(2005년)과 문화예술 최고 영예상을 수상(2009년)하기도 했다.

목포 출신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서 끈끈한 연대감을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데는 최봉인 전 재경광주ㆍ전남향우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신문 상임고문, 전남일보 창간 임원 등을 역임한 최 회장은 '애향의 대부'로서 평생을 목포뿐만 아니라 광주ㆍ전남 출신 향우들을 규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서울=강덕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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