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지역에 대형 전시 유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관내 공립미술관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광주 북구 운암동 광주시립미술관 전경. |
특히 수도권에서 집중적으로 열리던 대형 전시가 광주시와 비슷한 인구 규모를 지닌 도시에서 개최를 앞두면서 관내 공립미술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기업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협력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전서 열리는 ‘반 고흐 특별전’
24일 대전시립미술관에 따르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76점을 선보이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특별전이 다음달 25일부터 6월22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대전시립미술관, 대전MBC, 대전일보, ㈜서울뮤지엄센터가 공동 추진해 이뤄진 공공-민간 협력 사례로, 예산 20여억원을 4개 기관이 분담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시가 대전에서 성사될 수 있었던 건 미술 기관 간의 긴밀한 정보 네트워크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대전시립미술관 관계자는 “1년에 국내에 들어오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는 30개가량이며 이 중 대부분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개최된다. 이 중 일부 전시를 지역에서 유치하기 위해서는 기관 간의 정보 공유, 신뢰가 중요하다”며 “대전시립미술관의 경우 그간 ‘피카소와 천재화가들’, 앤디 워홀을 필두로 한 ‘퓰리처상 사진전’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쌓아온 유대 관계가 이번 전시 유치에도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전시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현재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다음달 16일까지 열리는 동명의 전시가 종료되는 시점에 순회전 형식으로 성사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 흥행 실패가 부정적 영향 미쳐
광주에서 고흐 전시와 견줄만한 수준의 네임밸류를 가진 대규모 전시회가 열렸던 시기는 무려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지난 2008년 ‘루벤스, 바로크 걸작전’을 열고 루벤스 작품 19점을 포함해 75점의 작품을 전시한 바 있다. 광주시립미술관 측은 당시 흥행이 기대됐던 해당 전시가 예상보다 저조한 관람객을 기록하며 이후 대형 전시 추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 미술계는 침체된 전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대중성을 갖춘 대형 전시를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광주의 미술계 인사 A씨는 “광주시립미술관의 전시 기획은 예술성에 치중돼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확보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주도적으로 개최하려는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이다. 대형 전시 유치가 침체된 광주 미술계의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광주시립미술관을 포함한 관내 미술관들은 평일·주말을 막론하고 관람객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는 초중고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어려운 여름·겨울방학 기간에 특히 두드러진다.
관내 미술관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들에게 이목을 끌 수 있는 대형전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민간미술관이 개최하기 어려운 전시를 공립미술관이 나서서 기획하는 적극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처럼 대규모 전시가 광주에서 쉽사리 열리지 못하는 데에는 단순히 행정의 기획력뿐 아니라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은 광주시의 대형전시 개최가 어려운 이유로 △예산 부족 △미술관 규모 △교통 불편 △지역 특성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일부 지역 미술인들이 블록버스터 전시 개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미술계 인사 B씨는 “민감한 부분이지만,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전시를 지역 작가들이 반기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며 “대규모 전시가 열리면 그 기간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기업 문화예술 지원 유도해야”
광주시립미술관은 올해 본관 전시예산이 7억5000만원 수준인 걸 감안하면 이런 블록버스터 전시를 개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하며 예산을 증액하거나 기획사와의 협력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수십억이 소요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는 미술관 자체 기획으로는 예산상 어려움이 있어 기획사에서 전시를 조직해 공립미술관과 협력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이번 대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울 개최 후 지역에서 1회 순회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이는 철저하게 흥행을 염두에 두고 장소가 결정되기 때문에 시민들의 미술 전시에 대한 열망과 기획사의 관심이 맞아떨어져야 추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형 전시 유치에 민간기업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분야 지원을 통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구조 조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박지현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조교수는 “광주의 미술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수익 측면에서 대규모 전시 유치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지역 기업, 미디어 등의 지원과 협업이 중요하다. 특히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관심을 높여 후원을 유도할 수 있는 ‘지자체-민간-미디어 협력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광주시의 경우 기업들의 문화예술 후원이 전국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 이 같은 제도 마련이 더욱 시급하다.
한국메세나협회에서 발간한 ‘2023년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지역별 문화예술 후원 비율은 △서울시 37.6% △경기도 18.7% △부산시 10.4% △대구시 10.3% △충청도 4.1% △경상도 3.4% △울산시 3.2% △인천시 2.5% △강원도 1.6% △전라도 1.5% △제주도 1.1% △대전시 1.0% △해외 0.8% △광주시 0.3%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미비한 광주 지역의 문화예술에 대한 기업 후원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매칭펀드 프로그램이나 세제혜택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 프로그램을 고안해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