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관일기 1

최근 12·3 내란 사태의 여파로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문인들의 작품과 투사들을 조명하는 책들이 주목받고 있다. 언론인이자 학자였던 지명관 선생은 지난 2022년 1월1일 향년 98세의 나이에 별세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다.

이 작품은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이던 당시 그가 ‘T·K생’이라는 필명으로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던 시기에 작성한 일기다. 그가 이 같은 필명을 사용한 이유는 국내 정보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가 이 일기를 작성하던 시절은 이와나미서점이 발간하는 월간지 ‘세카이’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연재를 게재해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투쟁의 생생한 실상을 알리던 시점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일본·독일 교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을 알렸다.

이번에 간행한 제1권에는 1974년 11월1일부터 1976년 12월29일까지의 기록이 수록됐다. 1974년은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인 문세광 사건이 발발한 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첫날 저자는 사건의 영향으로 기록물이 압수됐을 때 벌어질 동지들이 처할 운명에 대한 두려움도 나타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듯 은밀하게 보관하기 위해 A4 사이즈 루즈리프에 만년필로 쓴 일기는 모두 4등분으로 접은 흔적이 남아 있다.

4명의 엮은이는 이번 ‘지명관일기’ 출간이 당대 국내에서는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던 일본과 해외에서 전개된 민주화 투쟁에 대한 지원과 협력 네트워크 조감도를 그려내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으로 망명했던 지명관 선생의 정신과 지혜는 오늘날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던 국민들로 하여금 용기를 준다. 국내의 민주주의가 회복되자 마침내 귀국할 수 있었던 그는 온화하지만 분명하고 확고한 성품을 보여준다. 소란하고 혼란스러운 현재, 그의 정신이 오롯이 녹아 있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용기의 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