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소형 모듈형 원전(SMR), 사용 대상 확대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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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세이·최성주>소형 모듈형 원전(SMR), 사용 대상 확대될 것
최성주 원자력대학원 교수·전 주폴란드 대사
93)고리 1호기와 신한울 3,4호기, AI와 SMR
  • 입력 : 2024. 10.28(월) 18:09
국내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는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울산 원자력대학원(KINGS)과 바로 지척의 거리에 있다. 문 정권의 소위 ‘탈원전’ 정책으로 ‘폐로(閉爐)’ 선고를 당한 바로 그 원전이다. 다행히, 최근 윤석열 정부는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을 허가했다. 이는 탈원전을 폐기하고 원전을 중흥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에너지 안보와 기후 대응 측면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며, 우리의 원전 생태계도 신속히 복원될 것으로 믿는다. 한편, AI 이용의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기 위한 분산 에너지원인 SMR(소형 모듈형 원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분야는 전력은 물론, 의료 및 농업 등 실로 다양하다. 오늘날 원자력 발전은 국가 에너지의 중핵을 구성하고 있을 정도인데, 국내에서 최초로 가동된 원전은 박정희 대통령 말기인 1978년에 완공된 고리 1호기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일반적인 설계 수명은 40년이지만, 기술 점검을 거쳐 최소 20년을 연장하는 것이 보편적 추세다. 그런데, 2017년 7월 문 前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고리 1호기 현장을 방문하여 ‘탈원전’ 정책을 공표하면서, 고리 1호기의 가동이 영구 중단된다. 사실, 탈원전은 핵비확산 조약(NPT)이 인정하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다. 폴란드 주재 대사로 근무하면서 원전 수출을 목표로 정성을 기울이고 있던 필자는 문 정권의 탈원전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과 좌절을 느꼈다. 그 이후 우리 원자력계가 경험한 고통과 대혼란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탈원전 정책에 따라,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에 대한 건설 허가 절차도 중지되었다. 지난 9월12일, 최초 신청한 지 8년 만의 신한울 3, 4호기에 대한 건설 허가는 2016년 6월 새울 3, 4호기 이후 처음으로 내려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신한울 3, 4호기 건설 예정 부지를 방문하고, 원전 부흥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는 2032-33년까지 1400㎿급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으로, 약 11조 7000억 원의 공사비가 투입된다. 원전 모델인 APR-1400은 2009년에 대한민국이 최초로 해외에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과 동일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는 인공지능(AI)과 인터넷인데, 이를 위한 데이터 센터는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 한다.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면서 기후 친화적인 전력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악화일로에 있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하므로, 데이터 센터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한다. 즉,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재생 에너지와 원자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태양열과 풍력은 자연조건 여하에 따라, 에너지 공급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질 우려가 크다. 특히, 우리나라가 처한 지리적 여건과 기후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신재생 에너지만으로는 이러한 전력 소요를 결코 충당할 수 없다. 우리가 원전을 부흥시켜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다. 그런데, APR-1400과 같은 대형 원전이 국가적 전력망을 필요로 하는 반면, SMR은 지역 차원의 송전망(網) 연결로도 충분하다. SMR이 상용화되기까지는 몇 년 더 소요될 것인 만큼, AI와 인터넷의 데이터 센터 시설 내에 SMR이 연계되어 건설되고 운영되도록 미리 준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처럼 SMR은 분산 에너지원(源)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이 강조한 것처럼, ‘동네 원전’인 SMR은 AI 데이터 센터와 궁합이 잘 맞는 에너지원이다. 이에 따라, 구글 및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다국적 기술기업들도 SMR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리 1호기의 폐로라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극복하면서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 허가를 통해 원전 생태계를 온전히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기사회생(起死回生)하고 있는 원전 생태계가 대형 원전의 신설은 물론, SMR의 상용화로 일대 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특히, SMR은 올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분산 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도 에너지원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으므로, 향후 그 사용 대상이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원전의 사용후 연료봉 등 고준위 폐기물의 안전관리를 위한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안전 문제는 원자력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원초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