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광주 서구 유촌동의 한 아파트 방화문이 열려있고 적치물이 쌓여있다. 윤준명 기자 |
지난 22일 경기도 부천의 한 호텔 8층 객실에서 불이 나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중상 3명, 경상 9명 등 총 1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사망자 7명 중 5명의 사망 원인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나타났다.
화재 당시 해당 호텔의 계단 방화문 중 일부는 닫히지 않은 상태였고, 불이 난 810호(7층) 객실 문 역시 활짝 열려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방된 방화문을 통해 객실 밖으로 연기가 급속도로 퍼지게 된 셈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에서 32명의 사상자를 낸 화재도 방화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은 것이 피해를 키운 이유로 지적된 바 있다.
방화문 등 소방안전시설은 화재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광주 아파트와 주택 등지에서는 방화문과 소방안전시설 관리 등에 소홀한 모습이다.
28일 찾은 광주 서구 유촌동의 한 아파트 단지. 3개 동, 6개 라인의 106개 층을 돌아보니 현관인 1층을 제외한 100개 층 중 방화문이 닫혀 있는 곳은 단 1곳도 없었다.
일부 문은 주민들이 고임목 등으로 고정해 닫지 못하게 막아놓은 모습이었다. 방화문 근처에는 적치물을 쌓아놓지 말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문이 붙어있었지만, 대다수의 층계에 자전거와 화분, 상자 등 각종 적치물이 쌓여 화재 발생 시 피난과 폐쇄가 어려워 보였다.
경비원 A씨는 “입주민들이 여름철 환기 등의 목적으로 방화문 등을 개방하고 겨울이 돼야 외풍을 막기 위해 방화문을 닫는다”며 “적치물에 대해서는 주민을 대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경비실 차원에서 방화문 개방을 막을 방도는 없다”고 하소연했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따르면 아파트 방화문을 폐쇄·훼손·변경(개방)하거나 피상 계단 등 피난 시설 주위에 물건을 쌓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28일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맨션 계단과 옥상 대피장소로 가는 사다리가 적치물로 막혀 있다. 윤준명 기자 |
이곳 맨션은 준공 40년이 넘어가는 등 노후화돼 층별로 방화문과 소화전 등의 소방시설이 미비했고 일부 층에만 소화기가 비치돼 화재 발생 시 대형 피해가 우려됐다.
주요 대피시설은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이곳 역시 각종 적치물이 쌓여있어 주민의 ‘창고’로 전락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따르면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지에서는 소화기를 세대·층별 1개 이상 설치해야 하며,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침실, 거실, 주방 등 구획된 실마다 천장에 1개 이상 부착해야 한다.
28일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맨션 옥상대피 장소로 올라가는 사다리 앞에 각종 적치물이 쌓여 있다. 윤준명 기자 |
백은선 동신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건축물은 면적·층·용도별로 연소 우려가 적은 내화구조의 방화구획이 돼 있어야 하고 출입 등을 위한 개구부는 항상 닫혀 있는 것이 원칙이다. 개방돼 있더라도 자동개폐시설 등이 설치돼 있어야 한다”며 “다만 환기 등 주민 편의의 목적과 개보수 과정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단속 또한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화문·방화구획 등 소방시설은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광주지역 아파트 등 공동주택 화재 건수는 최근 3년(2021~2023년)간 364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1년 121건 △2022년 119건 △2023년 124건 등으로 사상자는 18명이 발생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