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미술계는 양적팽창을 거듭했지만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한계가 지적된다. 동구 예술의거리 전경. |
●광주 미술시장 경쟁력 있는가
국내에서 미술 흐름을 주도하고 시장을 형성하는 한국화랑협회에 등록된 광주 화랑은 △나인갤리러 △갤러리 자리아트, 단 2곳이다. 전남 소재 화랑은 단 한 곳도 없다. 한국화랑협회 등록된 타 지역 현황을 살펴보면 △부산 19곳 △대구 17곳으로, 광주는 ‘예향’ 타이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화랑협회에 등록된 화랑만이 전국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과 전국화랑미술제 출품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등록된 광주·전남 지역 갤러리가 많아져야 지역 출신 작가들의 진출기회 폭이 넓어지는 셈이다. 지역 갤러리가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을 갖춰야 지역 작가들 개인이 할 수 없는 해외전시와 판매도 주선 가능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광주·전남 출신 인기작가들이 서울 등 수도권 소재 갤러리와 협업해 전국 미술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아트페어 성적을 비교해도 차이가 벌어진다. 지난해 열린 제14회 광주국제아트페어(아트광주23)의 총 작품 판매액은 24억7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열린 제12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의 총 작품 판매액은 약 210억원, 아트페어대구2023의 작품 판매액도 200억원을 초과한 것과 비교하면 수익금에서부터 차이가 벌어진다.
●“미술시장 주도 화랑·갤러리 전무”
아트광주 구조를 살펴보면, 타 지역과 비교해서 미술시장이 전무한 광주미술 생태계 특징이 드러난다. 아트페어는 시장의 성격이 강하고 미술 흐름을 가장 먼저 주도한다는 행사의 특징상 화랑과 지역미술인이 직접 주체가 돼야 한다. 실제 키아프 서울 주관은 한국화랑협회가, BAMA(바마) 주관은 부산화랑협회가, 아트페어대구 주관은 대구화랑협회가 주관한다.
‘아트광주’는 시작부터가 관 주도였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지난 2010년 미술시장의 유통구조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출품작을 구매할 수 있는 ‘아트페어’ 형식의 행사를 새롭게 만들면서 시작됐다. 출범 다음 해인 제2회 아트광주를 광주문화재단이 주관한 바 있으나, 시장의 성격이 강한 행사의 특징상 화랑과 지역 미술인이 직접 주체가 돼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 이후 광주시가 사업자 공모용역 방식으로 행사를 주최하게 됐다. 주로 광주미술협회 중심으로 행사를 치렀고, 올해부터는 광주시 정책 변경으로 오는 10월 광주문화재단이 다시 행사를 주관해 치른다.
광주는 화랑협회 자체가 없다. 지역 출신 작가를 발굴하고 전국을 넘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게 하는 자체적 기획성을 갖춘 갤러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광주 소재 전시공간은 5개구 전역에서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광주미술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시각은 이 때문이다. 광주 갤러리들은 본연의 역할인 지역에서 전시 기획력을 갖추고 작가를 발굴하는 것보다 카페와 병원운영을 겸임하는 형태로 갤러리 수익구조를 찾거나, 작가 개인이 작품을 소장하고 작업공간은 겸임하는 형태로 변모해왔다.
아트광주의 잦은 주관처 변경 또한 안정적 행사 운영을 어렵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행사 몇 차례에서 참여 지역 갤러리가 부족한 것을 작가 개인 부스로 공간을 채운 사례가 이어지면서, 미술시장 붕괴에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예술성, 작가의 노동력 등 그림의 제값을 주는 작품의 시장가가 형성될 수 없을뿐더러, 상대적으로 이슈 파이팅이 적어 컬렉터들의 발길을 유도하지 못했고 관 주도로 작가를 도와주고 지원하는 후원의 성격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최근에도 지역 갤러리 부스 중 절반이 전시 경험이 없는 신생 갤러리 혹은 작가 작업실을 겸하는 갤러리가 참여한 아트광주 구조가 한계로 지적된다.
●제2의 예술의거리 나올까?
광주 미술시장은 과거 동구 예술의거리 중심으로 형성된 바 있다. 옛 전남도청 인근 위치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그림을 상납하기 전 액자를 맞추는 표구방이 생겨났고 이것이 화랑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예술의거리가 조성됐다. 광주 화백들은 민주화 열기에 예술의거리 인근 5·18민주광장에 모여들면서 1970~1980년대 호황을 이뤘다. 예술의거리는 1990년대 막대한 자본을 갖춘 백화점 운영 갤러리(광주신세계갤러리, 롯데백화점갤러리 등)가 생겨나고 IMF경제위기가 맞물리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99년 박물관 및 미술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전문 학예사 자격의 개념이 생겼고 광주에서는 2000년대 들어 미술관이 양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1992년 국내 공립미술관 중 최초로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1995년 광주비엔날레 출범, 2004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립 발판이 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시행, 2011년 광주문화재단 분리 발족 등. 관 주도의 미술기관과 함께 사립미술관도 속속 생겨났다. 미술기관 주도의 발전으로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신예작가를 발굴하는 여러 정책적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의 부재는 미술 생태계의 기관 의존도를 높이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게 했다. 지역작가들은 우물안 개구리로 전락해버렸다.
조인호 광주미술연구소 소장은 “광주미술은 비엔날레, 오월회화 등 개념미술이 성장할 동력을 갖췄음에도 미술시장은 성장하지 못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다른 지역보다 미술인구는 많은데, 미술시장은 없는 형태다”며 “미술시장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화랑을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기본적인 시장구조가 형성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화랑, 갤러리 중심으로 체계적인 미술시장이 정착되기 전 붕괴되면서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도 헐값에 넘기고 더는 작품값이 뛰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예작가들이 지역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세계적으로 광주미술을 알릴 수 있게 성장하려면 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 갤러리들은 자기 주도의 기획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