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광주 동구 라마다플라자 충장호텔에서 열린 제4기 전남일보 소울푸드 아카데미 제5강에 한재선 카이스트 겸직교수가 미래 거버넌스 실험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
한재선 카이스트 겸직교수. 김양배 기자 |
제4기 전남일보 소울푸드 아카데미의 다섯 번째 강좌가 지난 11일 오후 광주 동구 라마다플라자 충장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한재선 카이스트 겸직교수가 강단에 올라 ‘미래 거버넌스 실험:커뮤니티, 이해관계자, DAO’라는 주제로 새로운 관점에서의 조직 운영에 대해 강연을 진행했다.
한 교수는 현재 카이스트 겸임 교수로 활동하기 전 넥스알(NexR) 창업자 및 최고 경영자, KT 클라우드 웨어 최고기술경영자, KT 넥스알 최고경영자, 퓨쳐플레이 공동창업자 및 CTO와 크라운드 X 대표 이사를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 교수는 퓨쳐플레이 CTO로 활동하며 300여 곳의 기술 기반 스타트업 투자를 진행했으며 약 10조원에 달하는 투자 가치를 이끌어냈다.
그는 강연을 통해 블록체인 등 기술을 활용해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조직 운영과 탈중앙화된 새로운 자율조직인 ‘DAO’를 설명하고 기업은 이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의 강연은 ‘트리플에스’라는 한 걸그룹의 영상을 시청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트리플에스는 대표곡, 활동 인원 등 팬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일명 ‘팬참여형 아이돌’이다.
그는 “보통 앨범 대표곡은 소속사에서 정하지만, 해당 아이돌의 경우 소속사에서 앨범이 나오기 전 8개의 짧은 분량의 곡을 팬들에게 선공개했다. 팬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곡을 선택한 것”이라며 “소속 아이돌이 전부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활동할 인원도 팬들이 투표를 통해 정한다. 소속사는 팬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투표를 통한 아이돌 프로듀싱 시스템은 일본에서부터, 가깝게는 한국의 ‘프로듀스101’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행돼 왔다. 하지만 이러한 투표는 모두 조작 논란이 있어 왔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해당 아이돌 소속사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활용했으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투명하고 조작 불가능한 팬 투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투명한 투표를 하기 위해선 누가 팬인지 걸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팬 거버넌스 즉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선 진짜 팬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며 “이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게 포토카드 구매를 통한 투표권 획득 방식이다. 소속사는 팬들에게 3~5장이 들어가 있는 포토카드 한 팩을 판매한다. 판매된 포토카드는 ‘꼬모’라는 투표권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포토카드는 NFT 역할을, 투표권인 꼬모는 코인·토큰의 역할을 수행하며 판매된 포토카드 개수, 1인당 가지고 있는 꼬모 개수 등 모든 데이터는 다중 서버에 기록돼 있어 누구나 해당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고 해킹조차 불가능하다.
한 교수는 “해당 소속사의 전략은 아이돌이 활동하기 전에 포토카드를 먼저 팔아 활동 자금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또 팬들에게는 조작 불가능한 디지털 장부를 제공해 신뢰를 이끌어 소비에서만 끝나는 수동적인 팬 커뮤니티가 아닌 팬 거버넌스라는 진화된 형태의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팬 커뮤니티 거버넌스 사례를 통해 블록체인은 신뢰를 구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써 역할하며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조직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현재 대다수 한국의 ESG 경영은 E(환경), S(사회)에만 집중돼 있어 G(거버넌스, 지배구조)에는 신경을 못 쓰고 있다. 거버넌스를 폭넓게 해석하자면 조직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를 수행하기 위한 체계다”며 “협력적이고 자율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선 앞선 사례처럼 블록체인을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자율적인 거버넌스 구현으로 ‘DAO’라는 새로운 조직구조를 제안했다. DAO는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로 탈중앙화된 자율조직을 뜻하며 해당 조직은 리더나 이사회 없이 모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투표권으로서 거버넌스 토큰 보유가 필요하고, 이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에 프로그램화돼 투명하게 공개 및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
한 교수는 “DAO의 한 예로 일본 야마코시 마을이 있다. 마을의 고령화가 심각해 지역소멸 위기에서 탈피하고자 디지털 주민증을 판매했다. 마을의 문화유산인 잉어 그림을 NFT로 팔아 현재 인구의 약 2배 정도 되는 사람이 디지털 주민증을 구매했다”며 “이를 통해 모은 1억5000여만원을 마을 재건 자금으로 쓰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NFT 즉 디지털 주민증을 구매한 외부인들도 주민으로서 마을 재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로운 거버넌스를 형성해 타 지역인들이 애착심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DAO는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자율적인 거버넌스를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구조인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기업의 주체는 경영자, 경영진 그리고 직원으로 더 넓게는 투자자들이었으며 고객은 주체가 아닌 기업이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은 고객을 이해관계자로 바라보고 그들을 고려해야 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소영 기자 soyeong.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