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많은데”…지역 요양병원 안전사고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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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고령자 많은데”…지역 요양병원 안전사고 속수무책
광주·전남 입원환자 사망 잇따라
안전장치 미비·관리인원 부족 탓
요양병원 평가 전국 최하위 수준
“고령화 속도 맞는 돌봄체계 필요”
  • 입력 : 2023. 12.19(화) 17:55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광주 한 요양병원 병실 창문에 방범창 등 안전장치가 없어 추락 등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 보였다. 정성현 기자
최근 지역 요양병원에서 환자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환자 가족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다수 사고가 안전장치 미비와 관리 인원 부족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에 맞춘 치료·돌봄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19일 광주·전남경찰에 따르면, 지난 15일 광주 동구 용산동 한 요양병원 4층에서 치매 환자 A(74)씨가 2층 난간으로 떨어져 골절 등 중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자신이 입원해 있던 2인실의 가로 40㎝·세로 60㎝ 크기 프로젝트 창문(하단부를 밀어서 여는 창문)을 열고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A씨는 홀로 병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7월에는 무안 삼향읍 한 요양병원 4층에서 B(86)씨가 추락해 숨졌다. B씨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뒤 병실에서 혼자 격리 중이었다. 창문에 별도의 안전장치는 없었다.

앞선 4월 광주 북구 일곡동 모 요양병원에서는 두 노인 환자가 몸싸움을 벌이다 한 사람이 머리를 다쳐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병원 측의 제지는 없었다.

지난 18일 찾은 광주 한 요양병원도 안전관리 실태에서 위험수준을 보였다.

초등학생이 빠질 만한 넓이로 열리는 병실 프로젝트 창문에는 기다란 봉 하나가 안전장치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얇은 탓에 틈새로 머리와 어깨 등이 충분히 넘어갔다. 안전의 역할이 아닌, 어르신들이 잡고 서 있기 위한 ‘지지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창문은 끝까지 밀었을 때 약 16㎝ 공간이 나왔다.

병실에는 간호사·요양보호사 없이 생활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휠체어를 타거나 의료 침대에 누워 있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이따금 병원 관계자가 오갔지만, 볼일이 있을 때 뿐이었다. 불의의 사고 발생 시 대처가 어려워 보였다. 휴게실 등에는 안전봉 조차 없었다.
광주 한 요양병원 병실 창문에 방범창 등 안전장치가 없어 추락 등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 보였다. 독자 제공
환자 가족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모(51)씨는 “편찮은데 고령이어서 홀로 생활을 어려워 하신다. 가족들도 돌볼 상황이 아니라 시설을 찾게 됐다”며 “이곳에 치매·파킨슨병 등을 앓는 어르신들이 많다. 병실 내 CCTV도 없는데 방범창까지 마련돼 있지 않아 ‘혹 무슨 사고라고 나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요양병원은 노인복지법에 근거를 둔 요양원과 달리 의료법을 적용받아 수술실 외 CCTV 설치 의무가 없다.

다른 병실의 환자 가족도 “어머니가 코로나 당시 요양병원서 욕창이 생겼다. 생각만큼 병원 관리가 세심하지 않았다”며 “이후 면회시간 마다 꼬박꼬박 오게 됐다. 요양병원에 ‘믿고 맡긴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고 지적했다.

사법부가 지난해 1월부터 이달까지 내린 ‘요양시설 안전사고 판결(63건)’을 보면, △낙상 △추락사 △질식사 △폭행 △약물 △질환 발병 등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내용이 많았다.

지역 요양병원은 ‘안전시설 부족은 인정하지만 인력·재정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남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전담병원 등 팬데믹을 거치면서 요양병원 생태계가 무너졌다. 환자는 급감했고 ‘집단감염에 취약하다’는 부정적 이미지까지 생겼다. 광주·전남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평가서도 최하위”라며 “요양보호사·간호사 등 인력난 문제도 심각하다. 1인당 간병비 부담도 커 대부분 공동 간병인을 쓰는 상황이다. 환자의 보호·서비스 질 개선을 위해 먼저 재정·인력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환자 안전사고 예방에 대해서는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심평원이 지난 6월 발표한 ‘전국 요양병원 입원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에 따르면, 광주·전남 요양병원 135기관 중 상위 등급 1급은 8기관으로 전국(234기관)의 3.4%에 불과하다. 심평원은 매년 전문인력 비율, 환자 처치·진료의 적정성 등 16개 지푯값을 표준화해 요양병원에 1~5등급을 부여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시설·서비스 질이 낮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요양시설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지원 등 고령자 치료·돌봄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돌봄 체계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치매 등 장기요양 당사자·가족을 위한 정책이 있지만 ‘촘촘하다’고 할 수는 없다”며 “결국 요양시설 의존이 커질수 밖에 없는데, 고령화 속도에 맞는 노인 돌봄 체계가 필요하다. 지역사회 보호 시설을 늘리거나 기존 시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부족한 인력은 정부가 직원 교육을 한다거나 돌봄 지식을 보급하는 등 ‘준전문가’를 육성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