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광주 북구 무등야구장 재개장식이 열린 가운데 강기정 광주시장과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야구협회 관계자, 초등부 야구선수 등이 재개장 이벤트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공포의 검빨(검정 빨강) 유니폼’, ‘애환 담긴 목포의 눈물’

과거 호남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무등경기장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80·90년대 선동렬·이종범 등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선수들과 호흡을 함께 했던 시민들은 “무등경기장은 엄혹했던 시절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19일 광주 임동에 위치한 무등경기장이 ‘재개장 기념행사’와 함께 종합 경기장으로 거듭났다. 지난 2018년 전면 리모델링 공사 이후 5년 만이다.

이날 행사에는 강기정 광주시장·이정선 광주시교육감·나훈 광주야구협회장·초등부 야구선수·학부모·지역 주민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1부 개장행사·2부 초등야구부 이벤트 경기 순으로 진행됐다.

오랜만에 무등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은 함께 온 자녀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밥 먹듯 하던 ‘해태 왕조’ 시절을 설명하는 등 어릴 적 느꼈던 설렘을 되새겼다.

2부 이벤트 경기에 자녀가 출전한 구희원(49)씨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았던 무등야구장에서 아들의 경기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당시 아버지가 야구 규칙 등을 설명해 주셨는데, 어린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가르쳐 주셨을지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세월의 흐름을 느낀 날이다”고 미소를 지었다.

주민 이모(61)씨는 “국내에서 ‘왕조’라는 타이틀이 붙은 건 해태가 처음이다. 그만큼 잘했고 인기도 좋았다”며 “야구 성지 광주에서 무등경기장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철거 위기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반대를 외치지 않았나.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됐던 호남인들에게 해태는 유일한 ‘응어리 분출구’였다”고 회고했다.

지난 2013년 10월4일 기아 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를 끝으로 기아챔피언스필드에 홈구장 타이틀을 넘긴 무등경기장은 이후 기능 축소·건물 노후화 등으로 철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은 ‘무등경기장의 역사성을 보존하라’고 외쳤고, 광주시는 2016년 주민설명회·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2018년 전면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공사는 2020년 4월부터 착수됐다.

19일 광주 북구 임동 무등경기장 야구장 재개장식에서 부녀가 초등부 이벤트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전해연 인턴기자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가 ‘목포의 눈물’을 회상하며 5·18민주화운동의 비극을 이겨냈다는 이들도 있었다.

배부성(73)씨는 “해태의 홈구장이었던 무등경기장은 흉흉한 사회 분위기 속 유일하게 숨통을 트이게 해준 곳이었다”며 “끔찍한 5·18을 이겨내자며 모두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곤 했다. 응원가였지만 우리에게는 ‘아우성’ 그 자체였다. 재개장 된 경기장에 와보니 모두가 하나 됐던 그 순간이 생각난다”고 전했다.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망국의 한을 표현한 노래로, 80년대 엄혹한 시절을 보냈던 호남민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다. 즉, 광주 시민들은 야구라는 매개체로 사회적 울분을 표출하고 해소했던 셈이다.

무등경기장 재개의 감회는 어른들만의 감정이 아니다. 이날 이벤트 경기에 참가했던 '프로야구 꿈나무'들도 자신만의 생각을 밝혔다.

선두 타자 출루에 성공한 이승재(13) 선수는 “경기장 도착 전 부모님한테 이곳이 어떤 역사를 지닌 곳인지 전해 들었다. 그래서 더욱 타석에서 멋진 안타를 치고 싶었다”며 “다행히 첫 타석에 그 바람을 이룰 수 있게 됐다. 부모님도 몹시 기뻐했다. 평소 광주에 경기장이 없어서 화순 등으로 경기를 나가곤 했는데, 앞으로 이곳에서 더욱 많은 경기들이 치러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유종열 화정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은 “프로야구선수를 꿈꾸는 많은 아이들이 오늘 경기를 몹시 기다렸다. 개인적으로도 사라질 뻔한 곳이 이렇게 재개장 돼 남다르게 다가온다”며 “(선수들과) 대회를 찾아 원정 경기를 다니곤 했다. 그러나 이제 광주에도 건실한 야구장이 생겨 다행이다. 아픈 역사가 있던 이곳이 이제는 유소년·사회인 야구 성장의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해태의 상징 ‘검빨 유니폼’은 광주민의 애환이 담긴 중요한 추억이다. 그 홈구장이었던 무등경기장 또한 마찬가지”라며 “오랜 시간 끝에 (경기장에) 놀 거리·즐길 거리를 마련해 재개장하게 됐다. 앞으로 무등경기장이 시민들의 쉼터이자 세계적인 야구인을 꿈꾸는 미래세대들에게 훌륭한 체육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비와 시비 489억원이 투입된 무등경기장은 관람석 일부가 철거되면서 기존 본부석을 새롭게 교체하고 인근 주차난 해소를 위해 지하주차장 1037면을 조성했다. 또 아마추어 야구장과 클라이밍장·산책로·조깅트랙·어린이놀이터 등을 갖췄다.

19일 광주 북구 임동 무등경기장 재개장식에서 강기정 광주시장이 초등부 이벤트 경기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