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군경 부문 배성현씨 |
▷상이군경 부문 - 배성현 (고흥)
배성현(54)씨는 상이 7급 좌족관절운동 제한증의 신체적 장애 및 어려운 경제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고흥군상이군경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보훈회관 회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쳤다.
배씨는 지난 1989년 육군 1군수사령부에 복무하던 중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제한증 피해를 입고 1991년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부상으로 인해 일반생활이 어려운 환경에도 배씨는 김가공공장에서 일을 성실히 배우며, 공장을 인수해 지금은 연매출 10억원을 올리는 김가공공장의 대표가 됐다. 배씨는 고흥군상이군경회 사무장 등으로 활동하며 보훈가족의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독거노인, 결식아동 등의 불우한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매년 적극 후원했다.
배씨는 1995년도부터 2017년까지 매년 23회에 걸쳐 보훈자녀와 일반 불우자녀에게 장학금 100만원씩을 기탁했다. 독거노인과 결식아동 등에도 매년 수산물세트와 마른김, 맛김 등 지역의 특산품을 전달해 불우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또 고흥군상이군경 회원으로 활동하며 행사 때마다 행사 화환과 회원 위문품을 후원하는 등 타의 모범이 됐다.
공로를 인정받아 동부보훈지청장상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상, 고흥군수 표창, 국토교통부 장관상 등을 받았다.
증상이 배우자 부문 김도현씨 |
김도현(70)씨는 국가유공 상이자 2급 회원 오봉길씨의 아내로서 1971년 결혼해 안면파편창으로 거동이 불편한 중상이자인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했다.
김씨의 남편 오씨는 1967년 8월7일 청룡부대 해병으로 입대해 베트공 소탕작전을 벌인 후 진지 탐색을 하던 중 정찰대로 파견 나갔다가 폭격을 당했다. 사고로 1969년 5월 말 의병제대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김씨는 이런 남편을 옆에서 보필하며 슬하의 자녀를 훌륭히 키워냈다.
김씨는 경제적 자립의 결핍을 몸소 감당하며 2남 1녀를 고등교육까지 졸업시켰다. 자녀들은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해 지역의 직장인으로 근무하며 촉망 받는 인재로 산업전선에서 노력하고 있다.
특히 김씨는 자녀들에게도 국가유공자인 아버지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강조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인성교육에도 힘썼다.
김씨는 남의 집 품팔이와 조개잡이를 하는 어려운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이 한몸 버리겠다는 각오로 살아왔다.
김씨는 또 오래전부터 여수시 서운교회 권사로서 식사 수발 및 청소 등을 앞장서서 도와 주고 있으며, 불우한 곳을 찾아 따뜻한 온정으로 봉사해 귀감이 되고 있다.
미망인 부문 안수복씨 |
안수복(70)씨는 월남전에 참전해 고엽제후유증으로 투병생활 후 사망한 고 김은섭씨의 배우자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2녀를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안씨의 남편 김씨는 1966년 백마부대, 1971년 맹호부대로 월남전에 두차례 참전했다. 김씨는 1993년부터 당뇨, 언어·지적장애와 치료를 받았으나 일반장애 1급 판정을 받게됐다. 또 보훈병원에서 상이등급 3급을 받고 치료를 이어갔으나 병이 더 심해져 2007년에 사망했다.
안씨는 이같은 상황에도 남편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가정경제까지 책임졌다. 안씨는 목포병원에서 광주병원까지 배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등 남편을 15년간 옆에서 보필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농사까지 지으며 슬하의 두자녀를 교육해 사회의 훌륭한 일꾼으로 성장시켰다.
안씨는 2009년부터 미망인회 신안군지회장으로 활동하며 매월 현충탑 참배, 독거 및 불우회원 위문, 매년 2회 보훈요양원 자원봉사 활동, 보훈명예수당 인상 추진 등 보훈가족의 복지 증진에도 기여했다.
안씨는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전남지부 신안군지회장으로 활동하며 보훈회관 조성에도 힘써 2024년 10월 착공이 예정되는 등 성과를 올렸다.
또 명절 때마다 독거회원들의 가정집을 방문해 위문하고, 6·25 월남 참전 수당을 미망인들에게 제공하도록 군청에 건의해 2018년부터 매월 7만원씩 받도록 했다.
유족 부문 임애심씨 |
임애심(76)씨는 전몰군경유족회 여수시지회 회원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녀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임씨의 부친 임성춘씨는 6·25전쟁에 참가해 1950년 전사했다. 홀로된 모친의 보살핌 속에도 생활이 어려워 초등교육 밖에 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부지런함 덕에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임씨는 중매결혼으로 남편을 만나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세탁소 10년, 포장마차 28년 등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자녀 4명의 성실히 생활했다. 자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등 장성해 전몰군경 유자녀들의 모범이 됐다.
임씨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전몰군경유족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매달 1일 새벽 동틀 때 나와 지하 위패실을 청소하고 현충탑에 참배했다. 또 자산공원에 위치한 현충탑 정화활동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국가유공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데 기여했다.
불우회원 및 독거회원 위문 등 관내 보훈가족의 복지향상과 보훈단체 발전에 앞장섰으며, 대국민 보훈선양 캠페인 활동 등 참여로 지역 내 보훈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임씨는 헌신적으로 솔선수범하여 임실호국원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유족회원으로서 호국지킴이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특별(독립유공자)부문 오세영씨 |
오세영(81)씨는 광복회 전남도지부 광복회원으로서 광복회 전남지부 건립 및 목포연합지회 사무실 개소를 위해 노력했다. 전남도지부 건립을 위해 광복회원들과 7차례 간담회를 개최하고 유관기관과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사무실 개소를 위해서는 목포시청에 여러차례 건의해 사업비를 확보하는 등 보훈가족의 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오씨는 3·1절 기념식,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식, 경술국치 추념식, 8·15 광복절 기념식 등 국가 기념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오씨가 각종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광복회원 및 독립유공자 유가족들의 기념식 참여 독려 등 모범이 됐다.
특히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간 상리사회 복지관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약 60회 동안 주변 정화활동과 독거노인 및 불우이웃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봉사했다.
아울러 2008년부터 지금까지 상동복지관에서 10여년간 150회에 걸쳐 봉사하며 저소득층과 아동복지 등에도 힘썼다.
함께 주1회에 걸쳐 주변의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들의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등 자원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특별(무공수훈자) 부문 전정남씨 |
전정남(77)씨는 무공수훈자 전남지부장으로서 국가유공자 영현 합동 봉안식 개최, 영구용태극기 및 근조기 증정, 수의 전달 등 장례의전 선양활동으로 국가유공자의 예우 풍토 조성에 기여했다.
전씨는 2016년 무공수훈자회 전남지부 목포시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목포지역에 안치된 유택 16위를 안치하는 봉안 및 안장식을 주도했다. 안장식은 민·관·군 합동으로 열렸는데 당시 이낙연 도지사를 포함해 유족 등 1000여명이 참석해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애국심을 추앙했다. 이로써 후손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선양하고, 유공자들의 공훈을 선양했다.
전씨는 특히 국가유공자들의 장례의전 선양사업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전남 동부와 서부지역으로 나눠 장례의전 선양단을 편성하고, 영결식 및 영현 운구봉송 등의 행사를 주도했다. 또 유공자를 위한 대통령 근조기 증정업무도 진행했는데, 전씨의 노력으로 3811건을 증정하면서 단 한건의 민원도 발생하지 않아 타의 모범이 됐다. 아울러 2022년부터 무공수훈자회 전남지부장으로 활동하며 고령 및 원로회원 국가유공자 80명에게 고급수의를 지원, 회원 위문 활동 등으로 보훈가족의 복지증진에 기여했다.
특별(고엽제) 부문 조규석씨 |
조규석(81)씨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전남지부 보성군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단체운영과 회원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조씨는 1959년 4월 입대해 1965년 월남전에 참전했다. 1968년 전역하고, 보성군지회 지회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각종 봉사활동에 매진함으로서 지역 내 칭송이 자자하고 단체 위상 제고에 힘쓰고 있으며, 애국심이 투철하여 타의 모범이 됐다.
조씨는 2020년부터 기념탑 건립 위원회장을 역임하며 보성지역내 참전기념탑 설립에 기여했다.
또 현충공원 주변 환경조성에도 힘썼다. 현충공원 주변에 철쭉 1500주를 식재하고, 2021년 3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환경정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천안 독립기념관 내 통일염원 동산에 벽돌쌓기 활동을 하는 등 나라사랑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조씨는 보훈가족 뿐만아니라 지역 사회 봉사활동에도 앞장섰다. 조씨는 지역 마을 봉사대원으로 활동하며 2013년부터 매년 11월 독거 회원과 미망인 등 5명에게 라면 1박스씩 전달하고 있다. 또 불우 독거노인들에게 생필품을 전당하는 등 타의 모범이 됐다.
특별(5·18) 부문 양민도씨 |
양민도(69)씨는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전남지부 회원으로 민주화운동 당시 신체적·정신적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녀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양씨는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 상무대에 감금당해 온갖 고문과 구타로 고초를 겪었다. 당시 고문으로 현재까지 무릎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장애를 입었다.
상해와 구타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아내와 함께 자녀 2명을 양육해 가장의 역할에 충실했다.
또 1995년부터 현재까지 광산농악회원, 다드락 회원으로 27년간 활동하며 풍물놀이 무료공연 자원봉사를 펼쳤다. 2022년 10월 전남에서 주최하는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여하고 전남미술대전 등에 참가해 입상하는 등 민속예술 보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특히 나주지역 청년회 발전을 위해 성금과 물품 등을 전달해 1996년 감사패를 받는 등 지역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아울러 고금도에 2년여간 거주하면서 바닷가에서 폐그물과 쓰레기 등을 주워 정화봉사활동도 했다. 당시 차량사고로 발생한 인명구조 활동에 자신의 허리를 다쳐가면서도 적극 가담해 귀중한 생명을 구했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