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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가 가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1월엔 그나마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던 것 같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벌에 쏘인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면서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하겠다는 생각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부끄러움도 민망함도 없었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마냥 행복해서, 즐거워서, 지칠 줄 몰랐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또 다른 사명감으로 의기투합하면서 선생님들과 함께 해주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신명이 났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간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부쩍 옛날 생각이 난다. 어릴 적 강진 큰집, 작은집에 놀러 다니면서 느꼈던 아름다운 정서가 그립다. 큰엄마, 작은엄마들은 고추, 쌀, 깨, 마늘, 고구마 등등을 경운기에 실어다가 버스정류장까지 가져다 주셨다. 하나 하나 체크하면서 허리춤에 찬 곳간 열쇠를 풀어 없는 것 빼고는 다 조금씩이라도 챙겨주셨다. 그래서 나는 '친척들은 다 나눠먹는거구나'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큰엄마네 곳간은 요술쟁이 같았다. 없는 것이 없었으니까.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구루마를 끄는 아저씨와 집으로 걸어가는 발길도 그리 힘들지 않았던 기쁨이었다. 당연스럽게 사촌언니 오빠들이 고등학교나 대학에 진학하면 우리집에 와서 살았고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서 할머니께서 우리집하고 가까운 동명동에 집을 얻어 손자들과 생활하셨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서 우리집에 제사라도 지내고 나면 언니 오빠들을 밥을 먹게 하려고 엄마는 우리를 심부름 보내서 아침 한끼라도 함께 나눠먹었다. 그렇게 살아온 어린시절이 요즘은 꿈같은 추억이 되어버린 것을 느낄 때마다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 시간의 행복한 기억을 우리 아이들하고 나누고 싶다. 나눔의 문화를….
그래서 시작한 청소년사업인데 요즘 청소년의 문화가 정말 아쉽다. 가족과 정을 나누는 시간이 많지 않고 좋아하는 것도 자극적이어서 정서적 교류가 쉽지 않은 것을 경험하면서 어린 시절 가난하지만 나눴던 정이 더 그립다. 7남매가 서로 아웅다웅하면서 질서를 경험하고 배려를 알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하게 못살고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시절에도 금수저는 있었고 문화적 차이는 있었다. 심하게 공부에 내몰리지는 않았지만 야자의 추억도 깜지의 추억도 많았다. 학업숙려제로 센터를 찾는 아이들을 보면 무기력감과 동기유발이 안 되는 상황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었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의지를 상실하고 세상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현상을 누가 책임을 져야할까?
올 한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더 고민해야한다. 전국을 뒤흔든 촛불집회에서 유난히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도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래 더 귀 기울여 보자'는 생각을 한다. 올 한해 잘 해왔듯이 내년에도 또 내후년에도 더 듣고 마음 나누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속에 최선의 방법이 있다. 우리 어릴 적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이해 되지는 못하겠지만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하겠다. 그래! 그렇게 잘 살아보자.
이미경 도시참사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