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시내버스 파업 13일째인 지난 20일 송정19번 전세버스 내부 모습. 정유철 기자 |
●버스 대신 ‘기다림’을 탄 시민들
지난 20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롯데백화점 앞 정류장.
송정19번 노선을 대체해 투입된 전세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얼굴엔 피로와 짜증이 가득했다. 파업 기간 광주시는 전세버스를 투입했지만, 버스도착안내단말기(BIT)에 도착 정보가 표시되지 않아 시민들은 눈 앞에서 전세버스를 여러 번 놓쳐야 했다.
임남님(60)씨는 “시내버스를 대신한 전세버스인 줄 모르고 계속 놓쳤다. 탈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많고, 안내도 부족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옆에 서 있던 송현식(81)씨는 “도착정보 표시도 없고, 언제 오는지도 모르니 다른 버스를 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분간의 기다림 끝에 전세버스가 도착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시민을 기다렸다. 전세버스 안에는 하차 안내 방송이 없고, 손잡이도 부족했다. 도착지를 몰라 기사를 직접 불러 세워야 했고,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넘어질 뻔한 승객도 있었다. 최모(58)씨는 “버스는 깔끔한데 승객을 위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했고, 김성근(70)씨는 “시민이 볼모가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20일 오전 6시20분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어등초교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정승우 기자 |
같은 날 새벽 5시50분.
광산구 한 정류장에서 아파트 경비원 박해성(77)씨는 버스를 기다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또 택시를 타야겠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박씨는 시내버스 파업 기간인 13일 동안 매일같이 새벽에 택시로 출근했다.
박씨는 “원래 첫차를 타면 오전 6시 출근에 맞췄는데, 버스가 안 와서 매일 택시비만 수만 원이 나갔다”며 “보상도 없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출근시간이 이른 시민들은 버스 파업에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노선의 경우 첫 차 운행시간이 기존 오전 5시40분에서 파업 이후 1시간 가까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정류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결같이 “더 일찍 준비해야 한다”, “버스를 못 탈까 봐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박설희(56)씨는 “매일 평소보다 30분 이상 일찍 나와야 했다. 배차 간격도 들쭉날쭉해 더 피곤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강미소(17)양은 “6시20분에 타던 버스를 7시 넘어 타야 하니 지각할 때가 많다”고 말했고, 박진우(17)군은 “학교 가는 버스가 없어 한 시간 일찍 나간다. 집에 돌아갈 때도 버스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고 호소했다.
7년 차 간호사 고은혜(30)씨는 “6시30분 출근인데 지각이 반복돼 남자친구가 데려다줬다. 나 하나 때문에 피해가 커지는 게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광주버스터미널 직원 최훈(60대)씨는 “출근할 수 있는 버스를 찾기 어려워 매일 아침이 고역”이라고 말했다.
![]() 20일 찾은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버스정류장, 이날 파업으로 인해 광주와 장성을 오가는 첨단 193번 버스가 운행되지 않아 한 시민이 다른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준 기자 |
광주의 외곽지역과 인접한 전남권은 아예 버스 공백 상태에 빠졌다. 전세버스나 대체 노선 투입이 안돼 ‘교통 고립’이 현실이 된 것이다.
광주시는 파업 기간 중 일부 노선에 전세버스를 투입하고, 지하철은 12회 증편했으며, 혼잡한 14개 노선에는 임시 수송버스 42대를 배치했지만, 이용객이 많지 않은 농촌 지역 버스 운행은 중단했다. 실제 파업 기간 동안 진월 177, 두암 181, 충효 188, 첨단 192, 첨단 193 등 5개 노선은 운행이 멈췄다.
이날 찾은 전남 장성군 진원면에는 평소 광주와 장성을 오가는 첨단 193번 노선이 운행했지만, 파업 기간 모두 멈춰섰다. 마을 주민 김형로(77)씨는 “며칠째 이 정류장에서 헛걸음만 했다. 광주 버스가 안 와서 다른 지역 노선을 우회해서 타야 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평소에도 버스 배차 간격이 길었던 광산구 비아동은 첨단 192번 운행이 아예 중단되면서 주민들은 사실상 발이 묶였다. 임성자(58)씨는 “시내 중심지역은 전세버스라도 다니는데 여긴 그런 것도 없었다. 안내도 없어 버스를 놓치기 일쑤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주영(44)씨는 “다행히 파업은 끝났지만 그동안 지각과 결근 피해가 컸다”면서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촛불이라도 들고 광장으로 나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광주 시내버스 파업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13일 동안 벌어진 ‘교통 공백’은 많은 시민들의 일상을 위협했다. 전세버스 투입과 지하철 증편만으로는 외곽지역과 새벽 시간대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없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버스 파업으로 나타난 혼란과 불편은 단순히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시민들의 고통으로 남았다. 모든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이동권 보장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세한 영상은 진일보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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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철·정승우·이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