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뚱이 갈라져 병들었으니 온전하게 합해 치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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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몸뚱이 갈라져 병들었으니 온전하게 합해 치료해야"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 남과 북, 몸과 사회
니시가츠조가 창안한 니시요법
불치병ㆍ약 부작용 심할 때 조명
자연치유력 강조 이론ㆍ실천방법
  • 입력 : 2018. 03.29(목) 21:00
2003년 백두산 백두역에서 지낸 천제. 필자 제공


니시가츠조(西勝造)의 자연치유 건강법

니시의학, 현대의학의 범주에서는 통합의학, 대안의학, 대체의학, 대체치료 등의 범주로 분류된다. 흔히 니시요법이라고 한다. 니시가츠조(西勝造)가 창안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불치병이나 약의 부작용이 심해진 경우에 조명을 받는 이론이자 실천방법이기도 하다. 자연치유력을 강조한다. 심지어 만병통치의 비결이라거나 약이 필요 없다는 등 위험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말기 암 환자 등 특수한 경우에 효험을 보기 때문에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건강법을 활용해 아토피와 간암 등이 나았다는 치료사례들이 종종 보고된다. 주된 방법은 단식과 자연식이다. 풍욕이나 냉온욕 등을 권장한다. 손과 발 등 사지의 모세혈관이 중요하다는 입장에서 나온 이론이다. 모관운동, 장운동, 붕어운동, 합장합척 운동 등 모세혈관의 활성화를 돕는 운동법들이 개발되어 있다. 몸이 스스로 치유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면역력을 높이는 쪽으로 건강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의문이 든다. 이런 건강법들이 오로지 니시에 의해서만 개발되었을까?



니시의학에서 해관의 민족생활건강법까지

한동안 민족의학이란 용어를 사용하던 그룹들이 있었다. 해관(海觀) 장두석 선생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단식운동 그룹이 그들이다. 그가 쓴 '사람을 살리는 단식'은 지금도 단식요법을 거론할 때마다 인용된다. 하지만 '민족의학'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현행 법률로는 호명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생활건강법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자칭 타칭 '민족생활의학'은 민간요법 혹은 민간의료에 해당된다 하겠다. 이런저런 운동법들을 보면 니시요법에 상당부분 의존해 있다. 물론 우리 전통의 사상의학이나 한의학, 혹은 동의학에 기초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니시의 건강요법들이 대개 한국의 전통적인 민간요법에서도 거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니시가 건강요법을 완성할 때까지 읽은 동양의학 서적이 7만6000권이라 한다. 이것이 모두 일본서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동의보감 등의 전통의학을 거론할 때 중국의 황제내외경이나 각 소수민족들의 전통의학서들을 인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 나라들의 전통은 따로 있지만 큰 범주의 동양의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니시는 360여종의 건강법을 자신이 직접 생체실험을 하며 완성했다. 이후 와타나베 쇼, 고다 미쓰오 등 내과 전문의들에게 계승되어 니시의학을 집대성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니시의학을 활용하는 의사들을 비롯 그룹들이 여럿 있다.



해관 장두석의 생각, 몸에서 사회까지

해관 장두석이 니시의학을 섭렵한 것은 1969년경이다. 해관은 그 이전부터 동의학, 한의학, 민간요법 등을 활용해 환우들을 살피고 있었다. 니시요법에 오로지 의존해왔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컨대 니시요법에서 말하는 평상침대와 경침, 열요법 등은 한국전통의 민간요법 중에서 흔하게 보고되는 사례다. 니시의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척추를 바로잡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며 배변을 돕는 것을 건강법의 으뜸으로 삼는다. 아침밥을 폐지한 것이 그 중 특색이다. 조식폐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의 여지들이 많아 단정해 말하기는 위험하다. 하지만 먹는 것보다 배변에 역점을 두는 인식은 참고할 바가 많다. 이런 관심과 노력들은 자연스럽게 북한 동포들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북녘동포들의 식량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여 이후 북한 돕기 모금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본래 니시 단식법에서부터 조반을 폐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던 터라, 이 한 끼의 결식으로 북한동포를 돕자는 취지였다. 이 생각들은 몸의 질병이 역천(逆天,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진단에서 비롯되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다시 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인역(人逆)으로, 땅의 뜻을 거스르는 지역(地逆)으로 이어진다. 인역은 사람간의 믿음이 무너진 세상을, 지역은 온갖 공해와 농약으로 찌든 땅을 말한다. 이 질병들은 분단이라는 사회모순으로 치환된다. 미국을 제국주의의 전형으로, 분단을 모든 사회악의 주범으로 단순 도식한다. 무리가 많은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문제를 우리사회의 문제로 인식했다는 점 참고할 만하다. 몸과 세상을 한 틀로 보는 법, 동양사회의 오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현실을 읽어내는 키워드며 니시의학과의 변별점이기도 하다. 니시가 몸의 건강을 위해 건강법을 창안했다면 해관 장두석과 그 무리들은 몸과 사회를, 이 한반도를 하나의 틀로 보고 질병과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시도한 셈이다.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의 관심

약칭 '한민연'이라 한다. 이들의 관심은 몸과 사회가 하나고 남한과 북한이 하나라는 데 있다. 아픈 몸, 분단된 한반도의 문제를 묶어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진단이 나왔으면 처방이 필요하다. 무슨 처방인가. 단식이다. 개인의 질병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병에 대해서도 단식과 생식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단식과 생식이 사회적 혁명이라는 것이다. 낡고 부패한 것을 청산하는 과정이 단식에 속한다. 새로운 인물과 새 기운으로 사회를 채우는 것이 생식의 과정이라 말한다. 서구식 생활에 물들어 있는 현대의 생활패턴을 전통적인 생활패턴으로 바꾸자고 한다. 개인적 질병의 문제를 민족적 질병의 문제로 치환하자고 한다. 이와 관련한 유일한 논고를 집필했던 이정배 목사는 다음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이 땅에서 체득된 조상들의 먹거리 문화, 곧 의식주생활에 대한 경험적 인식체계를 소상히 알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밥이 곧 약임을 주장한다. 그래서 밥과 약의 이원적 분리를 주장하는 서구 상업주의에 대한 민족적 항거의 차원을 지닌다고 분석한다. 둘째, 건강을 담보한 주객도식의 관계를 거부한다. 즉, 인간 몸에 대한 지식의 독점으로부터 백성들을 해방시켜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 계발적 인식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것이다. 셋째, 인간의 체질을 바꾸고, 몸을 훈련시켜 궁극적으로는 심성개조 및 사회변혁, 민족개조를 꿈꾸는 무혈혁명이라 주장한다. 나는 이 취지에 동감한다. 이들의 단식 방법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하지만 서구식이니 동양식이니 단순 도식하는 방법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미제니 일제니 하는 대응방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진단은 유사하나 처방을 달리한단 뜻이다. 사회를 갱신하는 세세한 처방에 대해서는 지면을 달리해 소개하겠다.



백두와 첨찰 합토제, 한반도라는 몸뚱이의 갱생을 위하여

2003년이었다. 나는 해관선생과 평양을 다녀왔다. 단군릉에서 비나리를 하고 삼지연 공항을 통해 올라간 백두산에서 천신제를 올렸다. 고 박병천 선생이 구음을 했다. 내가 장구로 반주하며 제의를 도왔다. 백두산 천제, 아마도 분단 이후 처음이었을 것이다. 대동강변 량강도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밤새워 백두산 들쭉술을 마셨다.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이야기했다. 일행들과 백두산 흙을 한 줌 담아왔다. 이 흙을 가지고 내 고향 진도 첨찰산에 올랐다. 합토제를 지냈다. 한반도를 하나의 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것처럼 남과 북 왕래가 열리길 기도했다. 남쪽의 진돗개와 북쪽의 풍산개를 데리고 판문점을 넘어 만나자고 약속했다. 몸뚱이가 갈라져 병이 들었으니 온전하게 합하여 치료하자는 뜻이었다. 그 약속이 비로소 이루어지려나.

그때로부터 15년여를 보냈다. 풍전등화 같던 시절도 겪어냈다. 이즈음 깜짝 놀랄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난다고도 한다. 어제는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나고 돌아왔다.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조바심이 나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다. 하지만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은 통일의 '통'자도 꺼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만을 목표로 스포츠나 문화방면에서 교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치적인 통합만이 통일의 완성이 아니다. 통일은 저만치 밀어두고 급변하는 정세를 예의주시하며 민간교류와 협력을,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늘려갈 때다. 몸뚱이와 땅덩이를, 개인과 사회를 하나의 틀로 보고 진단하며 처방했던 전통적인 치유 방식이기도 하다. 사회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이라며 온갖 훼방을 놓는 많은 식자들, 미국이나 중국의 처사에 의존해 있는 정치인들에게 휩쓸릴 필요 없다. 유사 이래 맞이하는 한반도의 운명을 배타적인 그들에게 맡겨 어찌 스스로 갱생하며 새 시대를 맞이하겠는가.





남도인문학 TIP 해관 장두석과 병을 스승 삼은 사람들


1938년생, 화순군 이서면 학당마을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병약했다. 죽은 줄 알고 보자기에 싸 밖으로 내놨더니 다시 꾸물거려서 목숨을 부지했다. 어려서 난을 피해 입산을 한다. 열일곱에 폐수종과 간장 질환으로 옹성산에서 토굴 생활을 하게 된 것이 건강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자연생활의 이치를 터득했다. 스무 살 때 진보당 청년당원으로 활동했다. 이승만 정권 3ㆍ15 부정선거 투쟁에 나서기도 하고 4.19 혁명 뒤에는 민자통 활동을 한다. 스스로 '땔나무꾼'임을 강조한다.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를 다니다 만 것이 학력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화순 북면 백아산 자락에 야간 민족학교를 운영한다. 서른하나에 광주로 이사한다. 그간 공부해오던 한약과 민간요법을 접고 '자연의학'에 몰두하게 된다. 서른여덟에 '자연건강대학'을 세워 건강하게 사는 길을 안내한다. 마흔 하나에는 광주 양서협동조합의 설립을 이끌기도 한다. 1980년 마흔 셋에는 5ㆍ18 민중항쟁 당시 '수습대책위'에 들어가 활동한다. 계엄군의 무력진압을 막고자 '죽음의 행진'을 함께 한다. 505 보안대에 구속되어 1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특별 사면된다. 52세에 제1회 민족생활학교(10박 11일)을 시작한다.

54세 이후에는 독일, 중국, 인도, 일본, 캐나다(1996년), 몽골 등지에 민족생활요법을 전하기도 한다. 이후 200여회 넘게 4만 여명의 수련생들을 지도했다. 민족생활학교(한민연)가 공식적으로는 개교된 것은 1989년부터다. 6월 광주 무등산에서 열린 '자연의학 및 단식 생채식 수련회'가 시작이다. 당시는 '한국자연건강회 광주전남지회' 및 '자연의학 생채식연구회'의 이름으로 교육이 실시되었다. 니시요법을 근간으로 하는 자연건강법이 주로 교육되었다. 질병에 대한 원인을 환경공해, 식품공해, 의약품공해 등에서 찾고 있다. 해결 방안으로 된장찜질, 겨자찜질 등의 실습요법, 채식 위주의 먹거리 등이 강조되었다. 유기농법 등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사가 교육에 대폭 반영되었다. 교육내용도 종교철학 등의 정신교육, 동의학, 민간요법 등의 이론교육, 단식, 생채식 등의 실습교육으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해관이 2015년 타계한 후 제자들이 화순 무등산자락 양현당에서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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