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와이드>꺼져가는 상권… 목포 중앙시장의 눈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로컬와이드
<로컬와이드>꺼져가는 상권… 목포 중앙시장의 눈물
조선소 작업복들 얼큰한 뱃노래 가물가물
C&중공업 '퇴출'로 매출 직격탄
그 많던 '퇴근길 대포 한잔' 뚝
우후죽순 음식점들 이젠 "막막"
  • 입력 : 2009. 07.30(목) 00:00
2006년 C&중공업이 진출하면서 목포 연산동 중앙시장 일대는 먹을거리촌이 형성됐다. 자고나면 식당 하나가 생길 정도로 붐이 일었지만 올해 퇴출기업 명단에 오르면서 가게들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회색 작업복 차림의 손님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여름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약속이나 한 듯 몰려오던 '작업복 손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식당 주인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오늘도 곁눈질을 하면서 바깥 동정을 살피곤 한다. 마을 동구밖에서 서울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이다. 벌써 7개월째다.

중고시절 교복마냥 똑같은 색상과 종류의 유니폼을 입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지난 27일 찾은 목포 연산동 중앙시장 먹을거리촌. 이날 퇴근무렵이 되자 3㎞에 달하는 곧은 2차선 도로 양 옆에 늘어선 식당들은 새벽부터 준비한 먹을거리를 내놓았다. 메뉴는 순대와 국밥, 삼겹살 등 주로 서민들이 즐겨찾는 것들이다.

"작년 이 맘때만 해도 불야성을 이뤘어요. 자리가 없어 못 팔 정도로 작업복 손님들로 꽉 찼어요. 그 땐 금방 부자되는 줄 알았어요."

이 곳에서 10년째 순대를 파는 중앙순대 주인 박정례(55ㆍ여)씨는 요즘 장사가 어떠냐는 물음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손님들로 북적이던 1년 전의 모습이 언제 다시 올지 감감하다고 넉두리까지 했다. 매출이 20~30% 떨어졌지만 워낙 단골손님이 많아 그나마 가게 유지를 하고 있다고 위안했다.
<그림1중앙>
도시 팽창으로 10년 전 구도심에서 이 자리로 이전한 중앙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띤 것은 지난 2006년 11월 C&중공업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조선산업 관련 직원들은 상당수가 전문직으로 외지인들이 많다. 직장 근거리에 둥지를 틀고 생활권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해안가에 위치한 C&중공업 단지에서 불과 1~2㎞밖에 떨어지지 않는 중앙시장 일대가 이들로서는 근거리다.

이 때부터 1000여 명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중앙시장 일대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시장은 금세 북새통으로 변했다. 식당의 매출이 30~40% 오르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곳은 2배 정도 뛰었다. 아파트 매매와 전세도 1000만원씩 올랐다. 매출이 오르니 당연히 상가 인심도 후해졌다. 이른바 조선산업의 특수를 누린 것이다.

중앙시장이 절정에 이른 것은 지난해 봄 무렵이다. 이 때부터 가을까지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는 곳마다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더욱이 당시 조선단지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2009년께는 직원들이 3000명으로 늘어난다는 장밋빛 청사진이 시장에 나돌면서 다른 지역의 상인들까지 이 곳으로 몰려들었다.

"난리가 났었죠. 먹을거리촌 가게가 새로 생긴 것만 해도 어림잡아 60곳은 넘어요. 자고나면 옆집에 점포가 새로 나왔을 정도니까요."

순대집 주인 이영미(48ㆍ여)씨는 지난 2007년 11월께 조선산업의 특수를 기대하면 자신의 점포를 큰 길가로 이전했다. 다른 업종의 점포였지만 권리금만 1500만원을 줘야했다. 가게 이전에 3000만원이라는 목돈이 들었다. 하지만 중앙시장의 들뜬 분위기로 봐서는 금방 갚을 것처럼 생각돼 큰 부담이라 여기지 않았다.

이씨처럼 당시 중앙시장에 올인한 가게만 100곳이 넘는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노래방, 세탁소, 편의점 등이 속속 들어섰다.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중앙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퇴출 대상 기업 에 C&중공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금융권이 워크아웃 신청을 받아들여 채권 동결 등 정상화의 길로 가던 길목에 복병을 만난 것이다. 워크아웃 중단은 사실상 기업퇴출을 의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람이 든 것은 몰라도 난 것은 티가 난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기업 퇴출로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빈자리는 너무 컸다. 더욱이 중앙시장의 판도는 1~2년만에 작업복 손님들이 '단골' 자리를 꿰차면서 토박이 옛 단골들이 떠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잃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고깃집이다. 조선산업 관련 직원들의 단골 회식장소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는 식육식당괴 횟집이다. 하지만 이들 식당은 회식이 잦은 것이 알려지면서 일반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노동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무지 먹었어요. 회식 한 두번 하면 매출이 금방 50% 가량 올랐어요."

중앙식육식당 주인 한기범(56)씨는 작업복 손님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하소연이다. 당시 조선소 사람들의 매출이 평균 30%정도는 차지했다. 덩달아 회식으로 빼앗긴 이전의 단골손님들을 어떻게 불러모아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횟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직원들 회식으로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경험을 한 횟집 주인들로서는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작업복 손님들의 회식 몇 번이면 금방 1주일치 매상을 올렸다고 회상한다.

경제 사정이 나빠진 건 먹을거리촌만 아니다. 조선산업의 특수를 기대하며 문을 열었던 노래방과 편의점, 비디오방 등 생활시설도 예기치 않은 경기불황으로 죽을 맛이다.

중앙시장 상인들은 하루빨리 조선관련 산업이 정상화돼 예전의 상권을 되찾길 고대하고 있다. 간절한 기원을 넘어 C&중공업의 회생을 위한 작은 움직임들도 일고 있다.

이날 오후 11시께 길다랗게 뻗은 중앙시장 양 켠 상가들의 불빛은 작고 희미했다. 1년 전의 시끄럽고 낮을 방불케 한 화려한 전등불의 부활은 올 것인가.

글ㆍ사진=한현묵 기자 hanshim@jnilbo.com
목포=전호영 기자 hyjeon@jnilbo.com

작업복들 다시 북적일 순 없을까
C&중공업 회생 다각모색… 상인들 "정상화 간절"
<그림2중앙>
목포 연산동 중앙시장 상인들의 가장 큰 바람은 C&중공업이 하루 빨리 정상화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화의 길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불경기에 선뜻 인수자나 자금지원하려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C&중공업이 목포에 둥지를 튼 것은 지난 2006년 11월이다. 진출한 지 1년만인 지난 2007년 11월에 선박 건조를 위한 작업이 본격화 됐다. 하청업체를 포함해 직원은 1000여 명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도장 등 전문 기술자들로 외지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C&중공업은 외국 선사들로부터 선박 60척에 대한 수주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선박 건조작업이 한창일 때인 지난해 9월 자금압박을 받아 일부 라인에서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석달 뒤인 11월 C&중공업은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채권금융단에서는 자금을 지원하면 회생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워크아웃을 받아들였다. 채권 상환 유예와 선수금 환급보증 등으로 자금난에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올 1월 정부는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하면서 워크아웃 상태인 C&중공업을 'D등급'으로 판정해 사실상 퇴출기업의 운명을 맞았다. 수주 받은 선박 60척 가운데 단 한척도 건조하지 못한 채 퇴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퇴출된 후 지난 6개월간 C&중공업은 다각도로 경영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 C&중공업은 그동안 외부 자금지원과 함께 매각 등을 고려하고 있다.

박영길 이사는 "부채를 청산하면 경영권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며 "최소한의 관리인원만 남아 문닫은 공장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현묵 기자
로컬와이드 최신기사 TOP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