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신분의 벽에 가로막힌 애틋한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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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신분의 벽에 가로막힌 애틋한 사랑 이야기
<루이자 밀러>
독일 대문호 쉴러 ‘간계와 사랑’ 원작
베르디, 신분 갈등 등 사회 현상 담아
사회 모순·인간 탐욕 등 사실적 묘사
1849년 3막 오페라 이탈리아서 초연
  • 입력 : 2025. 06.12(목) 10:35
베르디의 오페라 ‘루이자 밀러’에서 로돌포 역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열연하고 있다.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2018년 공연)
베르디는 오페라 <나부코> 이후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온 유럽에 퍼져 섭외 1순위 작곡가로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특히 베르디는 뛰어난 문학작품을 골라 오페라화했는데 세익스피어의 문학작품 외에도 빅토르 위고, 알레상드르 뒤마, 당시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쌍벽을 이루던 프리드리히 쉴러(Fri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작품이 베르디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쉴러의 ‘군도’, ‘돈 카를로’, ‘간계와 사랑’은 베르디의 오페라로 승화된 주요 작품이며 이번에 살펴볼 베르디의 <루이자 밀러>는 쉴러의 ‘간계와 사랑-Kabale und Liebe’이 원작이다. 신분의 벽에 부딪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모티브로 제작된 오페라로 독일 원작을 이탈리아어로 개작하면서 여주인공 이름인 ‘루이자 밀러’로 바뀌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루이자 밀러’ 공연 장면.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1849년 3막 오페라로 이탈리아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된 베르디 <루이자 밀러>의 원작인 쉴러의 ‘간계와 사랑’은 당시 시대정신으로 대두되던 계몽주의 정신과 혁명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민 계급과 귀족 사이의 신분 갈등과 적대감, 그리고 이를 통해 투영해 볼 수 있는 오류 투성인 사회적 구조, 그리고 이를 파고드는 인간의 탐욕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이러한 모순된 사회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된 보통 사람의 비극은 당시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켰으며, 이러한 극적 요소를 기반으로 베르디는 운명을 두고 갈등하는 사회 현상을 음악에 담아 서사극으로 승화시켰다.

베르디의 오페라 ‘루이자 밀러’ 중 루이자 역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에와 로돌포 역의 테너 리차드 터커.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1967~1968시즌)
베르디의 오페라 <루이자 밀러> 1막의 제목은 ‘사랑’이다. 막이 오르고 마을 사람들이 루이자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이때 루이자의 아버지인 밀러가 들어오는데 그는 딸이 새로 온 영주의 집에 머무는 카를로라는 청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랑이 잘못된 사랑이 아니길 바란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고 루이자와 방금 도착한 카를로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교회로 가고 곧 발터 백작의 집사 부름이 들어온다. 그는 밀러에게 자기가 일 년 전에 루이자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왜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냐고 격하게 힐난하며 밀러에게 언젠가는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 경고하고 루이자가 사랑하는 카를로가 사실 신임 영주 발터의 아들 로돌포라고 밝힌다. 한편 간악한 부름은 그 길로 발터에게 가서 아들이 루이자와 사귀고 있다고 밀고한다. 이 말을 들은 발터는 아들 로돌포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아비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이때 로돌포가 등장하고 발터는 로돌포에게 자신의 조카이자 공작 미망인인 페데리카와 결혼하라고 종용한다. 미망인 페데리카는 막대한 재산과 지위를 물려받게 되었으며 독일왕조와 긴밀한 사이인 그녀와 로돌포의 결혼을 통해 발터는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속셈으로 로돌포의 거부에도 결혼을 강요하며 무조건 순종하라고 윽박지른다. 이어 페데리카가 도착하고 발터는 로돌포에 자기가 시킨 대로 그녀에게 청혼하라고 속삭이고 퇴장한다. 하지만 로돌포는 폐데리카에게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것을 말한다. 무대는 다시 밀러의 집이다. 멀리서 외치는 사냥꾼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루이자는 사냥팀에서 빠져나와 이곳으로 오겠다는 카를로를 기다리고 있다. 이때 밀러가 들어와 카를로가 그녀를 속였다면서 그는 사실 발터 백작의 아들 로돌포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신부가 벌써 도착했으며 곧 화려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다.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며 낙담하는 루이자, 이때 로돌포가 들어와 자신의 이름은 속였지만, 마음은 진실하며 자신이 루이자의 남편이라고 한다. 밀러는 이러한 로돌포의 모습에 경솔한 젊은이라고 말하며 발터의 분노를 어떻게 막아내겠냐고 묻는다. 그 말에 로돌포는 비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아는 비밀을 누설한다고 하면 아버지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백작이 들어오고 이어서 루이자의 마음을 음탕한 꽃뱀의 추악한 사랑이라 힐난한다. 이 말에 밀러가 언젠가 루이자가 당한 모욕을 반드시 갚아 주겠다고 비방을 하고 이에 발터 백작을 모욕한 죄로 밀러는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루이자의 애원에도 백작은 그녀 역시 끌고 가라고 명령하고 말려도 역부족인 로돌포는 마지막 수단으로 백작이 어떻게 영주가 되었는지 전모를 밝히겠다고 외친다. 이 말에 화들짝 놀란 백작은 루이자를 풀어 주라고 한 다음 황급히 자리를 뜨고 갑작스러운 상황의 반전에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2막의 제목은 ‘간계’이다. 루이자가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만나러 성으로 향하는데 이때 부름이 들어와 밀러가 풀려나기 위한 묘책이 있다며, 로돌포에게 자신이 지위와 부를 얻기 위해 사랑하지 않은 로돌포를 유혹했다는 거짓 내용의 편지를 쓰라고 종용하고 루이자는 아버지의 석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작성하게 된다. 장면은 바뀌어 발터 백작의 성에 부름이 들어와 백작에게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되었다고 보고한다. 루이자는 자포자기 상태로 굴복했고, 편지는 부름의 계획대로 로돌포의 손에 들어간다. 루이자의 필체를 확인한 로돌포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백작은 그녀에게 모욕을 주는 방법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라면서 페데리카와의 결혼을 권유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루이자 밀러’ 공연 모습.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3막의 제목은 ‘독약’이다. 친구들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루이자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때 백작에게 잡혀갔던 밀러가 들어온다. 밀러는 자기를 위해 희생한 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한다. 루이자는 써놓은 편지를 로돌포에게 전해 달라고 한다. 자살을 암시하는 루이자의 말에 밀러는 자살은 죄라면서 자신도 함께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간곡함에 루이자는 편지를 잊어버리고 마음을 바꾸고 두 사람은 이곳을 떠나기로 한다. 이때 로돌포가 몰래 루이자의 방으로 들어와 그녀가 기도하는 동안 컵에 담겨 있는 물에 독약을 탄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루이자를 붙들고 편지를 직접 썼냐고 묻는다. 루이자가 그렇다고 하자 절망한 로돌포는 물을 달라고 한다. 루이자가 독약이 들어 있는 줄 모르고 물을 준다. 로돌포는 물을 마신 다음 물맛이 쓰다며 루이자에게도 마시라고 한다. 루이자가 물을 마시자 로돌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한다. 로돌포는 루이자에게 천사의 탈을 쓴 악마라고 퍼붓다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루이자에게 부름을 사랑했냐고 묻는다. 루이자가 대답을 못 하자 그는 비로소 물에 독약을 탔다고 얘기한다. 죽음이 눈앞에 닥친 것을 안 루이자는 그제야 모든 사실을 밝힌다. 로돌포는 때마침 들어온 밀러에게 루이자가 독약을 먹었음을 알리고 부름과 발터가 들어오자 로돌포는 온 힘을 다해 부름을 칼로 찌르고, 아버지인 백작에게는 당신이 받을 벌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면서 그 앞에 쓰러져 죽으며 막이 내린다.

과거보다 평등하다는 근래 사회에서도 주위 환경과 부모의 욕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적인 서사는 종종 볼 수 있으며 특히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로도 자주 등장하는 이러한 스토리는 소설가들과 대본가들에게는 흥미를 유발하는 주제이다. 특히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로 방영됐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주인공 애순과 영범의 사랑을 반대했던 부모(윤부용)의 잘못된 판단은 오페라 <루이자 밀러>와 서사의 전개는 다르지만, 부모의 욕망이라는 틀에서는 비견되는 예라 할 수 있다.

‘루이자 밀러’ 파티션 삽화. 위키피디아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도전하고 즐기는 삶은 미래세대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 되곤 한다. 근래 다수 부모는 경쟁 사회 안에서 무엇보다 부모 자신이 세상의 잣대 위에 자식을 올려놓고 자신이 바라는 상을 그려나가며 그 틀에서 살아가길 강요하곤 한다. 이는 이렇게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삶이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해주는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도 이러한 삶을 자신의 숙명이라 받아들이고 자신이 추구하는 나름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부모가 택한 삶의 방식이 부와 명예 등을 경쟁 사회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이 더 즐길 수 있는 삶을 체념하고 부모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삶의 결말이 부모의 생각과 다른 불행한 결말로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부모가 자식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며 자녀의 행복은 뒤꼍에 던져버리는 모습을 오페라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베르디의 <루이자 밀러>이며 이 작품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자녀가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장래의 꿈을 위해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 부모의 역할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한곡의 명곡

로돌포의 아리아 Quandor le sere al placido(어느 고요한 저녁에) : 로돌포가 루이자가 배신했다고 생각하며 분노에 아름다웠던 연예시절을 상상하며 부르는 아리아. 플라시도 도밍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