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일인 3일 광주광역시 북구 동림동 제1투표소에서 택배기사 홍원희씨가 투표를 마친 뒤 인증 촬영을 하고 있다. 정승우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일인 3일, 광주광역시 북구에 거주하는 홍원희(50)씨는 이날 오전 9시께 가족들과 함께 동림동 제1투표소를 찾았다. A물류 플랫폼에서 택배기사로 8년째 근무하는 홍씨는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위한’ 휴일을 보장받게 됐다. 이는 주요 물류 플랫폼들이 이번 대선 본투표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한 데에 따른 것이다.
홍씨는 “모든 택배 노동자가 같은 날 휴무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에는 선거 때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왔다”며 “모처럼 휴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근교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한진·로젠·우체국택배 등 국내 주요 물류 플랫폼들은 대선을 앞둔 지난 5월 말 본투표 당일 배송을 멈출 것을 결정했다. 주요 택배사들의 움직임에 쿠팡도 2014년 ‘로켓배송’ 도입 이후 처음으로 주간 배송 중단을 공식화했다.
이는 택배 노조와 정치권의 ‘참정권 보장’ 요구에 따른 것으로, 20대 대선 당시 투표일에도 정상 근무를 소화했던 택배 기사들은 ‘택배 없는 날’ 지정에 따라 이날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동료들은 투표를 마친 뒤 가족들과 여행을 갔다. 모두 이번 휴무에 대해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이라며 ”일부 마음이 맞는 동료들은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료 택배 기사들을 보면, 업무 중 시간적 여유가 없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만큼,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투표권이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비쳤다.
홍씨와 같은 택배 노동자들은 대부분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투표일 유급 휴무를 비롯해 휴가 등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형편이다.
마찬가지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도 받지 않아 과로 등 산업재해의 위험을 느낄 때도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 없다. 기본급이 없고 건당 700~1000원가량이 지급되는 급여 구조상 그들은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도 일터로 향해야만 한다.
홍씨는 “일반 노동자들과 달리 우리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와 다름없다”며 “4년 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요구’에 따라 주 60시간 이상의 근무가 금지돼 있지만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투표일은 물론이고, 건강이 좋지 않을 때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 당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으나 거부권 행사로 표류하던 노란봉투법(노동법 제2·3조 개정안)이 대선 이후 탄력을 받아 재추진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홍씨는 “이번에 선출된 대통령은 노동자가 합당한 대가를 받고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영위할 수 있는 삶의 토대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며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기보다는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나라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승우 기자 seungwoo.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