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주민들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1일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봉천동 아파트 화재는 불을 낸 당사자가 죽어서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는 상당히 분노에 차 있었던 것 같다. 한 때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의 윗집을 방화한 것으로 보아 윗집과 소음 갈등이 원인이었을 거라고 언론은 추측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작년 한 해에만도 3만 건 이상 접수된 층간 소음 문제의 하나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불을 윗집 말고도 그 집에서 몇 집 떨어진 집에도 놓았고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빌라 주변에도 놓았다. 사건 당일 그는 자신의 집 주변에 불을 놓고 오토바이에 기름을 싣고 전에 살던 아파트로 달렸다. 이웃 주민은 인터뷰에서 그가 극심하게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방송에서는 그의 정신질환 가능성을 비쳤다. 그러나 그가 정신질환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이런 일을 벌였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또한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넘길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그는 노모를 모시고 살았고 또 노모를 잘 부탁한다는 유서도 남겼다. 그가 살아온 이력은 모르지만 그 나이가 되기까지 그는 특별한 기쁨도 기대도 없이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눈앞에 닥치는 일을 해결하고 정치적 혼돈과 불안 속에서 가시밭길을 걷듯이 힘들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는 보릿고개, 유신, 12·12 군사반란, 삼청교육대 사건, 광주 5월 항쟁, 6월 항쟁을 겪으면서 청춘을 보냈고 그사이 군 복무도 했을 것이다. 이후 IMF를 겪으면서 중년으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분단된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함을 의미한다. 그보다 40여 년 전에 태어나 6·25와 4·19를 겪고 마포 강변에서 양계를 했던 시인 김수영은 이 땅에 살아내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임을 시로 표현했었다. 특히 자화상을 그린듯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그는 살아내기 위해 정정당당한 일에는 반항하지 못하고 아주 적은 돈 때문에 반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슬퍼했다.
(전략)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중략)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노인 연령 상향을 통해 사회적 부담을 줄이고, 생산 연령 인구의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지자체마다 노인 일자리 마련을 현안으로 다루고 있다. 지난 8일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것을 보면 회원국 38개국 중에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는 10위인데, 복지지출은 뒤에서 다섯 번째로 경제 수준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 거기에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취업률 1위와 빈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나이 들어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고,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다. 설상가상으로 노인 자살률 1위까지 더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일자리 창출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의 뜻을 받든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든다”는 말을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나기 시작한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주인으로서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 전 국민의 20%가 노인인 나라에서 대선을 앞두고 많은 공약들이 발표될 것인데, 후보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국민을 존중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양심에 물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