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전 센터장 |
둘째 외손녀가 하는 부탁인데 안 들어줄 수는 없어서 부랴부랴 김제 장인에게 전화해서 이러이러하니 텃밭 감자심을 면적을 좀 남겨주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감자밭 남겨둘 터이니 우리가 내려와서 밭 일궈서 감자를 심으라는 것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부터 감자에 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골 출신이라 감자심기에 대한 기본 상식은 있지만 그래도 나 혼자 작은 농사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 되어 공부하기로 했다. 씨감자 준비, 씨감자 씨눈 자르기, 씨감자 소독하기, 밭이랑 만들기, 감자심기 및 방법, 밭에 퇴비 시비 후 관리하기, 검정비닐 멀칭하기 등등 해야 하는 게 많았다. 우산 날짜를 외손녀들이 귀국하는 날짜가 6월30일이니까 조금 늦게 수확하는 것으로 역계산 하여 본래는 3월 중순쯤 파종을 하는데 좀 늦게 3월 말일경 감자를 심는 것으로 날짜를 확정하고 장인어른께 3월 중순쯤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퇴비 시비 등 준비를 하고 2주 후 파종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월 중순경 처가를 방문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금 시기 넘어가면 감자는 안 된다는 장인어른의 완고하신 말씀과 함께 내일 당장 감자를 심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늦은 잠을 설치고 부랴부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밭을 일구고 비닐멀칭을 해놓고 난 후 아침을 먹고는 씨감자를 쪼개서 파종을 하였다. 옛날 어릴 적 새벽에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해서 새벽에 아버지 따라가서 밭일을 해본 적 있지만 나 스스로 새벽부터 밭을 일구고 퇴비를 뿌려 감자 이랑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감자밭 이랑을 만드는데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안경사이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왜 그리도 닦기조차도 귀찮은지. 하지만 워낙 내 성격이 깔끔하다고 자칭하는지라 감자밭 이랑을 만드는 것도 이웃집 이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만들었다. 장모님이 나와보시고는 무척 놀라시며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외손녀들을 위한 감자 파종은 끝이 났고 이제 파종한 지가 벌써 3주가 지났다. 감자는 파종 후 약 한 달이 지나야 싹이 난다고 알고 있지만 궁금한 나는 처남을 동원하여 감자 싹이 났는지 벌써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한 달이 안 되고 2주밖에 안 되어서 싹은커녕 움도 트여있지 않는다고 전해왔다. 가까우면 매일 가서 잡초도 뽑아주고 물도 가끔 주며 씨감자들과 대화도 할 텐데….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생장한다고 하지 않던가? 심는 자의 행복과 기대감을 숨길 수 없다. 언제쯤 싹이 틀는지, 언제쯤 순이 올라올는지, 또 꽃과 수확은 언제 하게 될는지, 무척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농부들이 피곤함도 잊고 매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심은 작물의 수확에 대한 기대와 꿈, 그리고 매일 그 작물의 생장을 보고 느끼는 행복…. 그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생장과 열매 그리고 또, 생장한 또 다른 그들의 반복되는 씨 뿌림이 아닐까?
뉴질랜드의 외손녀들은 오는 6월 30일에 귀국한다. 그리고 약 보름 정도 우리 집에 있다가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외손녀들을 위해 감자를 심고 매일 기도하며 그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 있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함께하는 보름 동안에 원하는 것을 다 해주려고 생각하는 중이다. 손녀들의 귀국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렇게 행복 할 수 있을까? 그 녀석들을 기다리며 감자를 심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가장 귀한 행복임을 고백한다. 6.30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