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신춘문예 희곡 당선소감 이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밑바닥까지 들춰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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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희곡 당선소감 이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밑바닥까지 들춰내는 것"
  • 입력 : 2010. 01.05(화) 00:00
이철 씨
봄이 오면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지난 8월입니다. 산부인과의 의사 선생님은 0.5센티미터의 아이를 확인시켜 줬습니다. 그 작은 생명이 준 감동은 참으로 컸지만 두려웠습니다. 제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제 삶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어머니가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말이 배울 만큼 배웠으니 자유롭게 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살기가 참 힘들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아이에게도 자유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게 뭔지 전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생활고를 핑계로 미루고 미뤄왔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그런데 당선 소식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그 아이가 오히려 제게 큰 힘을 불어넣어 준 셈이 됐습니다.

말만 앞섰던 제 자신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의 썩은 밑바닥까지 들춰내야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습니다. 제 자신의 부족한 면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하고 능력 없는 사람임으로 밝혀질까 두려워하는 마음, 글을 쓸 때 극복해야할 첫 번째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끊임없이 엄습해올 두려움을 견딜만한 것으로 여길 수 있게, 참 좋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자극을 멈추지 않았던 지민에게 고맙습니다. 연극을 맞닥뜨리게 해 준 '문밖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

누구도 죽음이란 걸 쉽게 결정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러니 가벼운 죽음이란 것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걸 다뤘으니 너무 맹랑한 짓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도 스스로를 경계하게 됩니다. 지금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일 겁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1975년 서울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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