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인근의 복사집 앞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윤준명 기자 |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인근에서 10여년째 복사집을 운영하는 조장환(50)씨는 갈수록 손님이 줄어 올해 최악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에는 개강 시기 강의 자료 제본과 시험 기간 동안 필기 노트, ‘족보’ 인쇄 수요 등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대학가 복사집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종이 출력물 대신 전자 파일 강의 자료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대학가 문화가 변화하면서 복사집을 찾는 이들이 급격히 감소했고, 조 씨를 비롯한 복사업체 종사자들은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손님과 일감이 집중돼야 할 개강 시기에도 학생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지 수년이 지나면서, 그 어려움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조 씨는 “과거 개강 시기가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새벽 3~4시까지 업무를 하고는 했다. 특히 일부 복사집에서는 책을 대량 불법 복제하는 경우도 많아 대학가에 저작권 단속도 자주 나왔다”며 “하지만 요즘은 단속을 나오더라도 살펴볼 것이 없다. 오늘 같은 경우도 손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정시 퇴근을 하게 됐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대학가 복사집의 어려움은 코로나 19로 촉발된 ‘페이퍼리스(Paperless) 캠퍼스’ 문화의 확산에 따라 비롯됐다. 지난 2020년 대학 내 비대면 수업이 시행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태블릿PC와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활용한 학습 방식이 빠르게 자리잡았다. 이후 대학 수업이 정상화됐지만, 종이로 된 서적이나 수업 자료보다는 전자기기를 이용한 디지털 학습 방식이 주류를 이루며 강의실의 풍경이 완전히 변화하게 됐다.
간혹 종이 자료를 이용할 때는 소액 결제를 하더라도 점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무인 프린트·스캔방을 이용하거나, 이를 PDF 형식으로 저장해 전자기기로 공유하는 방식이 선호되는 추세다.
조 씨는 “과거 학생 손님이 100명이었다면, 요즘에는 2~3명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며 “학교 산업단지나 외부 업체에서 보고서 등의 일감을 받아 근근이 운영하고 있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근심을 털어놨다.
실제로 24일 전남대학교 인근 대학가 복사집을 돌아보니 손님이 있는 상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복사집은 최근 업종을 변경한 듯, 외벽에는 여전히 복사집 간판이 걸려 있고, 중앙에는 카페 간판이 새롭게 붙어 있었다. 또 다른 복사집은 무인 프린트방보다 저렴하다는 홍보 문구를 내걸었지만, 효과는 미미해 보였다.
학생들은 종이 자료보다 전자기기를 이용한 학습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느낀다면서, 최근 수년 사이 대학가 문화의 변화가 뚜렷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모(23)씨는 “전공 서적 등의 필요한 부분만 스캔해 전자파일로 저장하는 게 훨씬 편하고,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며 “특히 강의 자료가 학사 시스템 등에 게재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자기기를 사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꺼내볼 수 있다. 최근 강의실에서 태블릿PC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이 더 드물다”고 귀띔했다.
일부 학생들은 빠르게 변해가는 대학가의 풍경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송준혁(26)씨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노트와 서적 등을 이용해 공부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책상 위에 전자기기를 두고 수업을 듣는 문화로 바뀌어 생소했다”며 “불과 몇년 전까지 학교 인근 복사집을 자주 이용하고는 했는데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에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종이 산업 전반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업주들이 시대에 맞는 자구노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형진 전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복사집뿐만 아니라 출판업을 포함한 종이 산업 전반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많은 학생이 강의안만으로 수업을 듣는 등 대학가의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런 흐름 속에서 업주들이 시대에 맞는 자구책을 모색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