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꿈꾸던 22세 나주 청년 신병교육대서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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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간호사 꿈꾸던 22세 나주 청년 신병교육대서 숨져
완전군장 후 ‘얼차려’ 중 쓰러져
자녀 입대 부모들 “안전 강화를”
군 인권센터 철저한 수사 촉구
  • 입력 : 2024. 05.27(월) 18:50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미2사단 장병들이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최고전사대회에서 완전군장 후 행군하고 있다. 뉴시스
광주·전남서 대학 생활을 하던 지역 청년이 입대 후 강원도 한 군부대에서 ‘군기훈련’ 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훈련병은 교육 중 자신의 건강 이상을 상급자에 보고했으나 훈련을 지속, 연병장서 의식을 잃은 뒤 사망했다. 육군은 철저한 조사·현충원 안장 등 사후 처리를 약속했지만,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걱정은 커져만 간다. 전문가들은 의료진 훈련장 미배치 등 근본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현장 관리·감독 실태에 대한 대대적 점검을 주문했다.

27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강원도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지난 23일 훈련병 박모(22)씨가 군기훈련 도중 쓰러졌다. 박씨는 민간병원으로 응급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25일 사망했다. 군기훈련이란 지휘관이 군기 확립을 위해 지시하는 정신수양·체력단련을 말한다. 과거에는 ‘얼차려’로 불렸다.

입소 9일 차인 박씨는 훈련 벌점이 쌓인 동료 훈련병 5명과 함께 완전군장(최대 40㎏ 달하는 전투장구류)으로 연병장을 돌았다. 1시간 가량 이어진 군기훈련 중 여러 차례 체력 저하를 호소하던 박씨는 지시 중단을 요청했으나 무시, 결국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육군 내부 규정에는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보행(걷기)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시 박씨는 보행이 아닌 구보(달리기)를 했다. 또 군기훈련 1시간 초과 시 중간 휴식시간 부여 등의 규정도 준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민간경찰은 박씨의 사망과 관련해 합동 조사반을 꾸려 27일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진행했다.

박씨의 빈소는 27일 오후 고향 나주에 차려졌다. 발인 일정은 육군과 논의 중이다. 군은 전날 박씨의 순직을 결정하고 일병으로 추서했다. 시신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육군 관계자는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며 “유가족의 입장에서 필요한 제반사항을 성심을 다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씨의 유가족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모든 일을 뒤로하고 사태 수습 중이다. 박씨는 보건진료소장을 지낸 가족의 영향으로 지역 간호대학에 진학, 졸업 후 환자를 돌볼 날을 기다리던 ‘예비 간호사’였다. 신경써야 할 큰 지병도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어 선택한 국방의 의무에서 그 꿈의 마침표를 찍었다.
서북도서부대 K1E1 전차가 백령도에서 해상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자녀를 입대시킨 부모들의 마음도 심란하다. 최근 군 내부에서 크고 작은 인명·안전 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아들이 논산훈련소에 입대한 김모씨는 “12사단을 비롯해 32사단 수류탄 사고를 보면서 ‘어떤 부모가 걱정 없이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입대한 아들이 같은 변을 당했다 상상하니 정말 아찔하다. 매 순간 연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이 잘 마련돼야 할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

앞서 지난 21일 세종시 육군 제32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 중 실제 수류탄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 훈련병 1명이 숨지고 소대장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는 9월 아들이 입대한다는 박장현(52)씨는 “‘얼차려’라는 단어가 옛 군시절 있던 말이다. 인권함양이 많이 된 요즘도 군기를 그리 잡을 줄 몰랐다”며 “예전엔 ‘내 아들은 군대를 안 가겠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군대가 최신·고도화 될 것이라고도 봤다. 그런데 되레 더 과거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국가에 끌려가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안전 등 제도적 울타리가 잘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철저한 조사와 함께 재발 방지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군 인권센터는 “박씨의 안색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을 확인한 한 훈련병이 현장에 있던 집행 간부에게 보고했지만, 체벌 중단 등 별다른 조처가 내려지지 않았다”며 “이는 간부가 훈련병의 이상 상태를 인지하고도 무시하다 발생한 참사다.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만민 동강대 군사학과 교수는 “(군기훈련을 하게 된) 벌점 제도가 문제가 많다. 영창이 없어지면서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군인정신 교육’을 줄 수 있게 됐다. 부대마다 체벌 경중·기준이 달라 31사단 같은 후방부대는 벌점 제도를 없애기도 했다”며 “현장 관리·감독도 재점검해야 한다. 군기훈련을 진행할 땐 명령·집행권자와 군의관이 상주해야 한다. 이번 사고에서는 ‘회복 골든타임’을 놓칠만한 허점이 있었던 것 같다. 빠른 안전 조치가 가능하도록 전문 인력 배치·매뉴얼 정립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