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시내 일부 아파트가 좁은 주차장과 불법 주차로 인해 화재시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화재가 발생한 서구 쌍촌동의 한 아파트 상층부가 검게 그을러져 있다.
배현태 기자 htbae@jnilbo.com |
하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이 화재 직후 울린 '소방벨'을 오작동으로 판단해 꺼버리는 등 안일한 대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 아찔한 고층 아파트 화재
지난 13일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불은 부부싸움을 벌이던 40대 남성이 홧김에 불을 지른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14일 서부소방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52분께 서구 쌍촌동 H아파트 12층 민모(48)씨의 집에서 불이나 거실 등 29㎡와 소파 등 집기류를 태우고 출동한 119에 의해 20여 분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민씨와 아내(41)가 3도 등의 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민씨의 집 위층 5가구가 그을림 피해를 입었다. 또 초등학생인 민씨의 아들(12)과 위층에 거주하는 주민 10명이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특히 심야 시간대 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나자 주민 100여 명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등으로 대피했고, 뒤늦게 화재가 난 것을 알게 된 일부 주민들은 옥상으로 대피하는 등 큰 소동이 빚어졌다.
경찰은 이날 민모씨가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예초기에 사용하려던 휘발유를 거실에 뿌리고 불을 붙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민씨의 아들은 "아빠가 엄마와 싸운 후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이후 거실에서 라이터를 켜는 소리가 들렸고 불길이 치솟았다"고 경찰에 진술했으나 현재는 "잘 모르겠다"며 진술을 번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화상을 입은 민씨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민씨를 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입건해 불을 지른 경위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 화재 초기 '소방벨' 꺼져
쌍촌동 H아파트 화재사건은 자칫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침착한 대처가 있었기에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실제 화재가 발생한 민씨의 집 바로 옆 라인에 사는 12층의 한 주민은 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출입구에 설치된 소화전에서 소방호수를 직접 끌어와 불길이 다른 집으로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복수의 목격자들은 전했다.
목격자 이모(38ㆍ여)씨는 "맨 끝 라인 12층에서 검은 연기와 불길을 치솟고 있었는데 바로 옆라인의 한 남성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소방호수로 불길을 잡고 있었다"며 "당시에는 소방차가 도착해 있지도 않았던 때였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펑'소리와 함께 불이 나자 민씨의 집 위층에 사는 주민 강모(45)씨는 계단을 통해 대피를 하면서 각 층의 주민들이 출입문을 두드려 대피를 시켰다. 이 아파트는 계단식 구조다. 강씨는 "갑자기 베란다 창문을 통해 검은 연기가 들어와 물에 젖은 수건을 챙긴 후 대피했다"며 "또 계단을 통해 대피하면서 각 층의 출입문을 두드려 잠자고 있을 수 있는 이웃들을 깨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화재 직후 주민들은 자력으로 불이 난 사실을 이웃에게 알렸지만,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화재 초기 울린 '소방벨'을 오작동한 것으로 판단해 꺼버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때문에 뒤늦게 화재가 난 것을 알게 된 일부 주민들은 옥상으로 대피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다행히 해당 아파트 옥상에는 '피난구조등'이 설치돼 있었다.
관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경보음은 각 세대와 경비실에 동시에 울린다. 최초 경보음이 작동했을 때 경비원이 오작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를 끄고 직접 나가서 확인했다"며 "불이 난 것을 보고는 경비원은 다시 경보음을 켰고 대피방송을 했다. 그 사이 나는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의 층을 오르며 육성으로 대피를 요청했다"고 했다.
공국진 기자 gjg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