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실천적 지식인을 위한 '다산' 탐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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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실천적 지식인을 위한 '다산' 탐구서'
  • 입력 : 2022. 11.24(목) 15:38
  • 이용환 기자

보물 제1683-2호 '정약용 필적 하피첩'. 2015년 서울 옥션 경매에 출품된 하피첩은 현재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뉴시스 자료사진

정약용 코드. 새움 제공

정약용 코드

박정현 | 새움 | 1만6500원

많은 사람들에게 정약용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대부분은 다산초당이 머리를 스치고 정조대왕, 수원화성, 유배, 천주교 등을 떠올릴 것이다.

신간 '정약용 코드'는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저술세계, 개혁정신 등을 현대적 시각에서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저자는 이런 노력을 200여 년 전 조선시대 '흑백의 인물' 다산에게 컬러를 입히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게 다산은 고리타분한 선비가 아니라 현대에 딱 맞는 인물이다. 그는 문과와 이과를 드나드는 양손잡이 능력을 보여준, 과학과 예술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르네상스형 천재였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하이브리드 지식인이 바로 정약용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다산은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서'를 펴낸 학자이자 사상가이면서, 200여 년 전에 엑셀을 돌려 어려운 계산을 척척 해냈다. 화성축성에 삼각함수를 활용한 수학자로도 유명하다. 이런 다산을 두고 저자는 수학자이면서도 음악가이자 메모광이라는 점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완전 닮은 꼴이라고 설명한다. 다산의 메모는 503권이라는 사상 유례 없는 저술을 남기게 한 비결의 하나로 꼽힌다.

정약용은 또 돈벌이를 하찮게 여긴 다른 선비들과는 달리 뛰어난 경제관을 갖고 있었다. 이미 관직생활을 할 때 양잠 등으로 생활비를 벌어들였기에 틈만 나면 양잠과 특용작물 재배를 해서 돈을 벌라고 강조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다리와 도로, 수레로 살아 움직이는 '시끌벅적한 나라'를 만드는 경제개혁, 양반도 직업을 갖는 사회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도 다산의 믿음이었다. 양반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무노동 무음식' 원칙이다.

다산이 말한 청렴도 목적이 아니라 통치의 수단이다. 다산은 청렴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고 했다. 청렴은 요즘의 지방자치단체장인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면서 부하직원인 아전들을 다루는 '통치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큰 욕심쟁이일수록 청렴한 법이고, 비리를 저지르는 이는 작은 욕심쟁이일 뿐이라는 게 다산의 지적이다.

다산은 또 조직 관리의 비결로 침묵을 꼽았다. 아랫사람의 작은 잘못을 보고도 말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갑자기 화를 내지 말라는 당부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목민심서에서 정약용이 말하는 공직자 행동지침은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서 돈키호테가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으로 가는 산초 판사에게 말한 통치자 매뉴얼과 판박이다. 공직자는 발걸음도 천천히 하고, 양파도 먹지 말아야 하고, 점심보다는 저녁을 더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리학의 선비들이 중국을 떠받들던 시대에 다산은 중국보다 일본에 주목했다. 그는 일본의 학문 수준이 조선 후기쯤부터 조선을 능가했다고 진단하면서, 일본에 대비책을 세워서 항상 경계심을 갖고 관찰하라고 당부했다. 개혁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라던 다산의 예언이 실현되는 데는 100년이 걸리지 않았다.

여성들이 과로하지 않도록 옷감 짜는 길쌈을 중단시키자고 했고 감옥에 있는 재소자들이 후손을 잇도록 부부관계를 허용하는 '가족 만남의 집'도 200여 년 전, 다산은 이미 제안했다.

정치부터 경제와 사회까지 대한민국이 미증유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헛발질도 점입가경이다. 이럴 때 다산 정약용과 같은 지장, 용장, 덕장이 책 밖으로 성큼 걸어 나왔으면 좋겠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이면서 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터인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유적지에서 수 백 개의 연이 하늘을 날고 있다. 뉴시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