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 시인이 전하는 부르고 싶은,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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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 시인이 전하는 부르고 싶은,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
  • 입력 : 2022. 10.27(목) 14:01
  • 이용환 기자
여순 동백의 노래
여순 동백의 노래

우동식 | 실천문학사 | 1만4,500원

"역사적 피해자의 관점과 시각이 시집의 서사요 서경이요 서정이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해석으로 완성되기에 거꾸로 되돌려 보는 시안(詩眼)이다. 고희를 넘은 여순 항쟁, 치유와 화해, 상생의 시선으로 여순 동백의 노래가 된 희생자들에게 이 시집을 헌정한다."

보성 복내면 유정리. 삼베로 유명한 그곳에서 삼베와 함께 50여 년의 외길 인생을 걸어 온 시인 우동식이 세 번째 시집 '여순 동백의 노래'를 출간했다. 시집에는 예비역 소령으로 여순 지역에서 예비군 중대장으로 근무하면서 항쟁의 현장을 직접 답사해 쓴 63편의 시가 4부로 나눠 실려있다. 제목 '여순 동백의 노래'처럼 시는 갑작스레 준비 없이 닥친 어수선한 해방의 정국에서 이념 대립과 국가 권력에 의해 무고한 민중들이 흘린 붉은 피에 대한 비가(悲歌)이자 치유의 노래다.

이동순(영남대 명예교수) 시인은 서평에서 "시집을 읽는 내내 놀랍고 가슴 떨리며 지독한 통분(痛憤)을 다스리기 어려웠다"면서 "시집 원고를 맨정신으로 읽어내기가 힘들다. 소주를 큰 컵으로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키고 시집을 다 읽었다. 그리곤 소처럼 한바탕 울었다."고 했다.

시집은 사마천의 '사기'처럼 기년체로 꾸며져 해방정국부터 4·3을 거쳐 여순 항쟁까지 서사가 이어진다. 1부의 시 제목들인 '해방-암운-화산-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신월리 농무-봉기-봉기군의 항변-여수경찰서를 점령하다'가 바로 시대적 사건의 순서다. 2부도 '잉구부 전투-무자비한 작전-손가락 총-형제묘' 등으로 엮어 사건의 실체를 어렴풋이 보여준다.

시집은 또 당시 거사의 진실을 세상에 제대로 밝히는 동시에 질곡의 현대사에서 시절을 잘못 만난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와 상생을 모색하는 치유의 시집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시인이 여순 항쟁의 붉은 서사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격랑이다/몇 번을 건너야/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나는 자꾸만 휩쓸려가고/겨울 시린 얼음 날에 몸이 베이곤 했다…"는 '섬진강'은 미학을 갖춘 서정시로도 충분한 성공이다.

74년 전인 1948년 10월 19일은 여수 14연대가 제주도민을 무력 진압하라는 정부 명령에 항명하며 여순사건이 시작된 날이다. 이후 올해 처음으로 추념식이 정부 주최로 열렸고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여순사건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이 첫걸음을 내디뎠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랄까. "섬진강은 언 땅을 녹이는 눈물길"이라는 우 시인의 절규와 간절함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수많은 희생자와 유족, 질곡의 현대사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가해자가 된 모두에게 위로가 되길 기대한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