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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리더의 말
  • 입력 : 2022. 10.04(화) 17:13
  • 이용규 기자
이용규 논설실장
지난달 19일 96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어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 재위 기간 2만여회의 공식 행사를 가졌다. 25세에 왕좌에 오른 여왕의 권위는 뛰어난 비전과 전략이 아닌 철저한 행동에서 나왔다. 로버트 하드만이 쓴 '우리시대의 여왕'에 따르면 의전과 격식을 중시한 여왕은 공식 행사를 군주의 임무로 여기고, 최선을 다했다. 여왕은 활발한 공식행사와 대외활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군주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 군주를 믿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의 원칙을 지키면서 공식 행사에서 감정 표현과 즉흥적 언행을 경계했다. 왕실 특유의 언어를 줄이고 젊은이나 하층민의 반응을 받아들여 대중 친화적으로 다가섰다.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아픈 상처를 위로하는 상징이자 구심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올해는 여러 이유로 침울하다"면서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이다"고 국민을 달랬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했을 때 여왕은 특별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가 확고하게 단결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후세가 우리를 매우 강인한 사람들로 기억하고 응전 방식에 자부심을 갖길 희망한다"며 국민들의 절제와 단결을 호소했다. 영국 국민들이 10일간의 국가 애도기간 긴 줄의 조문 행렬은 여왕에게 보여준 존경심을 방증한다. 정치권도 절제된 언어로 국민에게 용기를 안겼다며 그의 서거를 애석해 했다.

지난달 '48초 한미 환담'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 논란은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당시 행사장에서 나오던 윤 대통령이 "이 XX들이 승인 안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언급한 듯한 장면이 영상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국내외 파문이 커져가자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고 "이 XX는 우리나라 야당을 지칭"한 것으로 해명했다. 국민들은 대통령 입에서 나온 비속어를 반복해서 들어야 했고, 청력 테스트 대상이 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나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의회를 '바보들(idiots)'이라고 모욕했다'고 보도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통령실은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오히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이를 "가짜뉴스"로 비판하고 보도한 방송사를 찍어 사장을 고발했다. 언론이 있지도 않은 내용으로 국익을 침해했다는 요지다. 윤대통령이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를 사용해 국격을 훼손시킨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전혀 다른 곳으로 화살을 돌리니 씁쓸하다. 국민보다 미국을 더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위정자들의 태도에는 자존심 상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대통령은 공적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가 하는 말은 권위이고, 권력이기에 많은 절제를 통해 구사해야 함은 당연하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말은 그 자체가 법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힘든 시기일수록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민심을 어루만지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으로 온나라가 소용돌이속으로 빠져 들어선 안된다. 대통령이 사과로 결자해지에 나서면 다 해결될 일이다. 남탓, 언론 탓하지 말고 오로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도자의 넓은 마음을 보고싶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