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5>"전지구적 거대한 화두, 익살과 풍자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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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5>"전지구적 거대한 화두, 익살과 풍자로 비판"
무한의 세계, 이미지의 바다
  • 입력 : 2022. 10.05(수) 09:59
  • 편집에디터

2017년 영국의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Art review)'에서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 된 미디어 아트 작가, 영화감독, 비평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독일 뮌헨 출생, 1966~)은 디지털 기술 기반의 데이터 사회를 성찰적 다큐멘터리 및 연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파리 퐁피두센터,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등에서 주요 개인전 및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에서 전시를 선보였으며 모마, 테이트 모던,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Moma), 퐁피두 센터, 노이어 베를리너 쿤스트 페어라인 등 주요 세계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스크린의 추방자들〉, 〈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 등 다수의 저서도 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업과 저서에서 선보인 주요 개념은 '포스트 재현(Post-representation)', '포스트 진실(Post-truth)', '포스트 인터넷(Post-internet)' 등이 있다. 포스트 진실은 정서적이고 개인적인 믿음에서의 호소가 객관적 사실보다 여론을 형성하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히토 슈타이얼은 자신의 예술적 용어가 정의되기 이전부터 단일하고 고정적이며 '발견의 대상'이 되는 '진실 관념'에 대한 회의와 진실의 다수성을 인식하고 작업에 적용해 왔다. 포스트-재현 상황에서 디지털 이미지의 전 지구적인 생산과 순환이 다큐멘터리의 기록의 생산을 비가시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역설을 언급해왔으며, 이를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에서 다큐멘터리즘(Dcumentaryism)의 불확정성 원리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그의 작업은 주로 렉처(Lectur) 자체를 작품의 매체로 다루며, 작가가 주목하는 형상화 된 주제의 이미지 결과물을 일종의 연구 과정에 가깝게 제작하거나 나열하기도 한다.

히토 슈타이얼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시각예술 창작자로 글로벌 자본주의, 지구적 재난과 전쟁, 글로벌 유동성, 디지털 기술, 신 계급사회를 만든 빅 데이터(Big Data) 등 거대한 화두를 두려움 없이 다루는 작가의 내러티브에서 익살과 풍자는 중요한 작업의 주제로 작용된다.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부조리극의 형식을 띤 이야기에는 앞서 말한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펼쳐지는 격렬한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바탕이 되고, 그 안에 특유한 유머 그리고 독창적 시각 영상과 함께 들려오는 사운드 그리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 설치물과 동선이 현 사회적 현대인들과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뜨겁게 진행되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 최초 개인전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Hito Steyerl-A Sea of Data)> 는 각종 재난과 전쟁 속에서 기술이 인간을 구원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작가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회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담론적 질문을 던진다.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_미술관은 전쟁터인가? (Is the Museum a Battlefield?)_Commissioned by 13th Istanbul Biennial_36분 47초_2013년

전시의 타이틀 <데이터의 바다> 는 데이터·인공지능·알고리즘·메타버스 등 디지털 사회에서 이미지 생산과 순환, 데이터 노동, 동시대 미술관의 상황을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의 '독일과 정체성(1994년)과 '비어있는 중심(1998년) 등 다큐멘터리적 초기 영상 작품부터 2022년 신작 <야성적 충동> 까지 오랜 시간 그녀가 발표한 텍스트 작업을 정리하여 23점이 선보이는 대규모의 전시회로 3개의 전시실에 총 5개의 챕터로 나뉘어 작가가 주장하는 주요 개념과 메시지를 보여준다. (작가 또한 전시의 자신 작품들을 제대로 보려면 하루 3점씩 여러 번 관람하기를 권장하기도 했다.)

" 의무가 없는(have no duty) 미술, 어떤 가치를 수행하거나 재현할 의무가 없는 미술, 누구에게도 신세 지거나 봉사하지 않는 미술. 이런 미술이야말로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자율적 미술이 엘리트주의에 빠지거나 그 자체의 생산 조건을 망각하지 않았더라면 실현했을 바로 그것이다. "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_이것이 미래다 This is the future_2019년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_쇼셜심_2020년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_야성적 충동(Animal Spirts)_단채널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24분_2022년

또한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과 커미션 한 신작 <야성적 충동>은 코로나 이후의 대안 경제 체제를 예술가적 시선으로 제안하고 있다. NFT와 연동된 야성적 자본주의 시장을 비판하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ts)> 작품 제목은 시장을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드는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에 대한 논리를 펼쳤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의 개념을 빌려, 비트코인과 대체불가토큰(NFT) 등 새롭게 등장한 야생적 자본주의 시장을 논의하며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야성적 충동'이라고 명명한 데서 땄다.

오늘날 비트코인, NFT 등과 연동된 세계 시장 역시 탐욕과 두려움으로 인해 통제 불능으로 날뛰는 '야생 자본주의(Wild capitalism)'라는 것이다. 영상은 산악 지역의 양치기와 양 떼 등 목가적인 장면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요소, 탐욕의 상징처럼 늑대의 탈을 쓴 케인즈 아바타가 나오는 연극적 요소, 우유가 치즈가 되는 상징과 동굴 벽화라는 회화적 요소 등이 다채롭게 버무려져 상영되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요 이야기는 양치기 리얼리티 TV쇼를 제작하기 위해 스페인의 한 마을에 온 TV 제작진이 코로나가 터지자 기존 계획을 180도 수정하고 '크립토 콜로세움'이라는 동물 전투 게임 메타버스를 제작한 것에서 시작한다. 동물이 불에 타 죽으면 비트코인이 발행되는데 이런 탐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대항해 발효식품인 치즈 코인이 발행되는 등 대안 경제, 공유 경제를 제안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전 세계 팬데믹과 전쟁 속에서 "미술관은 다양한 상황이 벌어지고 갈등이 있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치열한 공간이죠. 미술관을 통해 예술에 대한 공적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우리 사회가 예술을 이해하고 토론하고 역사를 살펴볼 기회가 미술관에서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죠. 물론 이런 일은 드물어요. 하지만 분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문제점에도 공적의 미술관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어요." 라고 예술과 미술관의 사회 속 공공적 역할에 대해 다시한번 강조하기도 하였다.

히토 슈타이얼의 1990년대 초 부터 최근까지 진행 되어온 작업들과 실험 속에서 기록과 픽션, 진실과 허구, 그에 기반 된 디지털 작업과 아카이브 자료들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독창적인 작가적 시선을 따라간다.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 할 이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공동체적 모습을 상상하며, 디지털 시대의 알고리즘적 순간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지는 현대미술의 의미까지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