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헬기소리 들리면 어김없이 시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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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헬기소리 들리면 어김없이 시신 사라졌다"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기자회견||2017년 본보에 증언한 강길조 씨||옛 광주교도소 수감시 암매장 목격||실종자 최영찬 씨 아들 최승철 씨||“아침 인사가 아버지 마지막 모습”||행불자 DNA 확인 “희망 보인다”
  • 입력 : 2022. 09.28(수) 17:19
  • 도선인 기자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 등이 28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오월기억저장소에서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기간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새벽에 건물 바깥에서 헬기 소리가 가까이 들리면 어김없이 교도소에서 죽어 나간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유골 1구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염경선 씨로 잠정 확인된 가운데 암매장과 관련한 증언이 재차 확인되고 있다.

지난 2017년 본보를 통해 옛 광주교도소에서 벌어진 가혹행위에 대해 증언한 강길조(80) 씨가 "5·18 당시 옛 광주교도소에 목격한 사망자 52명이 어디에 묻혔는지 밝혀야 한다"면서 "5년 전 (본보에) 증언했던 내용이 이제야 사실로 밝혀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는 28일 5·18부상자회 기자회견에서 5·18 당시 암매장 가능성을 재차 시사했다. 1980년 5월 당시 전남방직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강씨는 전남대 앞 교차로에서 학생들을 도와주다 군인들에게 붙잡혔다.

지난 2017년 본보를 통해 옛 광주교도소에서 벌어진 가혹행위에 대해 증언한 강길조 씨.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군용트럭에 갇혀 옛 광주교도소로 이송됐던 강씨는 "군용트럭 뒤쪽 밀폐된 공간에 갇혀 실려 갔는데 군인들이 안에다 최루탄을 살포했다. 이송하는 내내 최루탄을 맞았으니 사람들이 코피를 흘리고 대소변을 보는 등 난리가 났다"며 "도착하고 나서 이미 14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강씨 기억으로 옛 광주교도소 중 창고 건물에 갇히고 16일 만에 풀려났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여러 가혹행위가 이뤄졌고 그가 보고 작은 쪽지에 따로 기록한 사망자만 하더라도 38명에 이른다. 교도소 내에서 치료받지 못해 숨졌거나 계엄군 만행으로 희생된 사망자는 창고 구석에 가마니로 둘둘 말아뒀다.

강씨는 "밤마다 헬기 뜨는 소리가 들렸고 어김없이 가마니에 말아진 시신들이 사라졌다"며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통해서 암매장 지시를 수행했다는 군인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교도소에 암매장된 유골 1구의 신원이 확인됐는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언제 묻혔고 헬기로 이송된 시신들은 어디로 갔는지 꼭 확인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5·18 행불자 가족 또한 유골 1구의 신원 확인 소식에 기쁜 마음을 내비쳤다. 5·18 당시 아버지가 실종된 최승철(58) 씨는 "자식 된 도리로 죽기 전에 꼭 아버지를 확인하는 것이 내 소원이다. 42년 동안 전국을 헤맸다"며 "오랜만에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니, 속도 답답하고 눈물만 고인다"고 말했다.

5·18 당시 아버지 최영찬 씨가 실종된 아들 최승철 씨.

최씨의 아버지 최영찬 씨는 5·18 당시 가난한 막노동꾼이었다. 아들 최씨는 "월산동에 살 때였는데, 나 또한 식당 출근길에 군인들에게 붙잡혀 맞았다.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는데, 그 후유증로 지금도 머리가 깨질 듯 아플 때가 많다"며 "며칠을 상무대에 갇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풀려나고 집에 와보니 아버지는 사라진 뒤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이웃 주민들이 아버지가 사라졌다고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냐고 말을 해줬다"며 "내가 상무대에 붙잡혀 간 날 아침 평소와 같이 아버지랑 인사한 게 마지막 모습이다"고 말했다.

이후 최씨는 42년 동안 유골이 나왔다고 하면 전국을 해맸다. 그는 "채혈도 다 해놨으니 눈 감기 전에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만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장은 "직접 시민을 사살하고 암매장 지시에 가담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암매장 진실이 또렷해지고 있다. 최근 5·18 당시 행방불명된 염경선 유공자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번 계기로 나머지 행불자의 신원이 모두 확인되길 바란다"며 "조사위 활동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나머지 76명의 행불자 신원과 행불자로 공식 인정받지 못한 242명 또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5·18부상자회는 5·18 행불자를 추가로 신청 받고 있다. 문의는 (062-383-5181).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