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오월 광주교도소서 사망 중상자 암매장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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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 광주교도소서 사망 중상자 암매장 가능성
광주교도소 암매장 사실로 ||2017년 본보 교도소 암매장 보도 ||중상자 방치·암매장 등 증언 공개 ||발굴 나섰지만 증언 장소 미발견 ||2019년, 무연고 묘지서 유골 나와 ||2022년, DNA 통해 행불자 확인
  • 입력 : 2022. 09.26(월) 17:12
  • 노병하 기자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에서 신원 확인이 안된 유골 수십구가 발견됐다. 사진은 시신 수습당시 영상. 518재단 제공
40여년간 소문만 무성했던 80년 5월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이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이들이 언제 왜 누구에 의해 이 곳으로 옮겨졌는지는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행방불명자 추적에 물꼬가 트인만큼 지역민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26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 묘지에서 발견된 유골 중 1구의 유전자 정보(DNA)가 5·18행방불명자 76명 중 1명의 것과 일치한다는 감식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또 다른 2구에 대해서도 유전자 정보가 일부 일치해 추가 발견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번 광주교도소 행불자 발견은 지난 2017년 본보에서 출발했다. 본보 사회부는 2017년 9월 한달간 광주교도소 암매장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특히 행불자 암매장의 실마리를 알고 있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소개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당시 본보는 1980년 5월 광주교도소 측이 작성한 '광주사태시 소요체포자 치료현황' 문건과 광주교도소에 재직했던 전 교도관, 체포자 등의 증언을 통해 80년 5·18 기간 광주교도소 내에서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시위대 중상자 '치료 외면', '고문', '사망 방치' 등 살상행위나 다름없는 만행이 있었음을 보도했다.

당시의 증언을 종합하면, 1980년 5월 광주교도소에는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들이 주둔했다. 교도소 부근 민간인 희생자 대부분은 1980년 5월21일부터 3공수여단이 머무는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무엇보다 이 곳에는 시위를 벌이다 전남대에서 붙잡힌 150여명의 시민이 이송돼 왔다. 이들은 계엄군의 체포과정에서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으며, 박스카 형태의 군용차량에 실려 이송되는 동안 계엄군이 밀폐된 공간에 터뜨린 화학탄으로 인해 대다수가 코피를 쏟고 살갗이 벗겨지는 화상을 입었다. 일부는 질식증세를 보이다 결국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계엄군은 교도소에 도착한 뒤 중상자를 위한 치료는커녕 시민들을 청소와 시설관리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에 집단 감금했다.

'소요체포자 치료현황'에 따르면 첫 치료가 시작된 21일에만 143명이 기록됐으며, 이들은 모두 '중상자' 또는 '응급환자'로 분류됐다. 하지만 정작 치료에 쓰인 의약품은 해열진통제, 과산화수소수 소독약 등 기초약품들 뿐이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일부 심각한 중상자들은 죽기 직전의 상태였지만 방치됐다. 그런 환자들은 후에 행적마저 묘연했다.

당시 의무과 소속이었던 민경덕 전 교도관은 "당시 교도소에 중상자를 치료할 만한 시설이나 약품이 없었다. 의료인도 2명 뿐이었다"면서 "첫날 치료를 제대로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어떤 사람은 누운 채로 대소변을 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다음날에는 그 환자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증언에 따르면 계엄군은 체포자들을 한 명씩 조사실로 불러내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이는 창고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고 허리는 세운 채 고개는 숙이도록 했다. 발가락이라도 움직이면 개머리판이나 곤봉으로 찍어 눌렀다. 심지어 살인 행위도 벌어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에 따라 이번 행불자 역시 끌려간 시위 중상자 중 한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사망자 발생에 대한 증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시 교도소 보안과에 재직했던 A씨는 "교도소 교무과에 설치된 조사실에서 군 당국의 조사를 받고난 뒤 송장이 된 채 실려나가는 사람을 봤다"면서 "똑같이 될까 두려워 교도관들은 입도 뻥긋 못했다"고 말했다.

보도 이후 당시 재소자와 계엄군의 암매장 관련 증언이 잇따르면서, 광주시와 5·18기념재단은 그해 11월 광주교도소 등지를 대상으로 '5·18행방불명자 암매장 발굴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약 2개월간 진행된 조사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 2년 뒤인 2019년 12월20일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공동묘지 개장 과정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골이 무더기로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류 작업 끝에 유골은 최종 262기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시 3년이 흘러 2022년 9월 5·18조사위의 DNA 조사에서 1명의 행불자가 나타났다. 42년만의 유골 발견이고 본보 보도 이후 5년만의 일이었다.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